나의 은밀한 잠옷 판타지

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편인가요?

by 지각쟁이

나에게는 잠옷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언제나 부들부들한 실크로브를 입고 ‘흐느적’ 걸어 나왔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던 공단 천 사이로 실루엣이 드러나 어찌나 섹시하던지. 결혼을 하고 가장 먼저 구매한 건 밥그릇 국그릇도 아닌 바로 실크로브였다.


옷은 입는 사람의 태도가 묻어나온다. 사람과 옷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옷차림이 완성된다. 아무리 예쁜 옷도 소화해내는 사람의 태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걸치는 옷이 사람을 만들어준다고 믿을 만큼 어리숙했다. 퇴근한 남편 앞에서 ‘나 원래 집에서 늘 이렇게 입어요’라는 느낌으로 능숙하게 입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종종 에로사항이 나타났다. (애로 사항이 아니라 실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결혼 전 나의 실내복은 주로 입다만 티셔츠나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였다. 소파위에 아빠다리로 앉아 맥주 한 캔을 끼고 리모콘을 돌리는 맛은 퇴근 후에 제일 큰 낙이었다. 그런데 이노무 원피스로는 쩍벌이 불가능했다. 앉았다 일어날 때도 속옷이 보일까 늘 조심해야했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모든 시간은 쉼이 아니었다. 옷매무새를 신경 쓰느라 켜둔 안테나가 불편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는 좀 나아졌다. 침대위에 누우면 살결을 스치는 보드라운 옷감에 절로 잠에 빠져드는 마약 같은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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