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에 서있는 나비

계절이 바뀔 때 현기증을 느끼거나 어지러우신가요?

by 지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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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에서 흰 나비를 보았다. 나비는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서 창백하게 떨고 있었다. 시리도록 차갑고 딱딱한 자동차 불빛에 속아서 갈 길을 잃어버린 것일까. 양쪽 날개에 남은 힘은 희망처럼 고갈되었다. 나비는 행인들의 발에 채일 듯 낮게 날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나비를 손에 담아 지상으로 나왔다.


캄캄한 지하주차장 밖은 밝은 낮이었다. 저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목캔디와 함께 차가운 물을 들이켰을 때의 청량한 감이었다. 시원한 산바람이었다. 바람에선 산의 야생나무 뿌리가 탐욕스럽게 쥐고 있던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바닥이 얼룩덜룩 했다. 가을비가 내렸나 보다. 아마도 나비는 무거운 날개를 이끌고 비를 피해 지하주차장으로 왔나보다. 하늘에는 세수를 마친 말간 해가 구름을 헤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나비를 놓아주자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덤불속으로 날아올랐다.


나비가 떠나고 텅빈 손바닥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던 어느 봄 날 흩날리던 벚꽃 잎이 떠올랐다. ‘엄마,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데.’ 딸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팔짝팔짝 나무 주위를 뛰어다녔다. “엄마!어어엄마!” 소리치며 달려와 오므렸던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고. 그 안에는 나비를 닮은 벚꽃 잎이 잠자고 있었다. 아이는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어부마냥 뿌듯해 보였다.


한 여름이었다. 우리는 모래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여름 날 바다에 갔었다. 더위를 피해 세 시간을 달려온 바닷가는 아스팔트보다 더 한 열기를 뿜어댔다. ‘빨리 옷가지들 훌렁 벗어던지고 물에 들어가’라는 민박집 아주머니의 잔소리 같았다. 냉수를 표시하는 수도꼭지 위에 파란색은 바다의 색이었을까. 한 여름에도 물속은 냉수처럼 차가웠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파도를 맞으며 물놀이를 하다가 입술까지 새파래질 때 즈음 모래찜질을 했다. 파내고, 주무르고, 두드리고, 두 손 가득 쌓인 모래가 흘러내리자 손톱만한 하얀 조개껍데기가 나왔다. 입을 벌린 한 쌍의 조개껍질은 흰 나비를 닮았었다. 아이는 조개껍데기에 낚시줄을 꿰어 만든 목걸이를 만들었다. 자신의 방 비밀창고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이의 조개 목걸이에는 한 여름의 더위도 추억과 함께 꿰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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