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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2. 2016

어쩌다 마주친 그대

여전히 꽃다운 나이로 기억하고 싶은 서른쯤, 거나하게 술에 취한 김에 애인이 보고 싶어서 그녀의 집 앞 골목길 코너에 자리한 슈퍼 평상에 앉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밤은 꽤 깊었고 하필 그 골목엔 가로등이 침침해서 늘 불만이고 걱정이었는데 내가 앉아 있었던 그 평상 자리도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식별하기는 당연히 어려웠을 것이다.

담배를 태우며 한여름 밤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는데 맞은편 집 파란대문이 열리며 종량제 봉투를 내어다 놓기 위해 나오던 아주머니가 나오다 말고 화들짝 놀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선 다시 문을 닫다 말고 또 빠끔히 열어서 나오길 주저했다. 나는 괜히 겸연쩍어서 요즈음과 달리 딱히 볼 것도 없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그 아주머니는 ‘엄마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십 미터도 채 안되어 보이는 가로등 밑 전봇대 앞에 재활용 봉투를 냅다 던지고는 다시 또 ‘엄마야’ 하고 아까보다 더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쏜살같이 자기 집 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아!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흉흉해진 세상 탓에 한밤중에 골목에서 술에 취해 담배를 태우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 아무런 위협도 없이 순식간에 잠재적인 성추행범이나 강도를 저지를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침침한 가로등 밑이라 제대로 식별이 되지 않는다 치더라도 지금보다야 백만 배나 더 앳되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터지는 범죄를 생각하면 그 아주머니의 느닷없는 행동이 이해가기도 하지만 골목골목 마음 편히 다닐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거 같아서 못내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뒤이어 나타난 내 애인은 격한 포옹에 적잖이 놀랐었고, 아무래도 그 파란대문의 음흉한 열쇠 구멍으로 그 아주머니가 훔쳐보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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