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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2. 2016

각인

대학교 다닐 때 인상파에 심취한 동료가 있었다. 

그는 어떤 소재든 인상파의 기법을 차용해서 풀어내는데 몰두했고, 특히나 좀 더 극적이거나 서정성 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듯이 보였다. 그가 택한 소재들은 당연히 주변의 인물이나 풍경에서 비롯됐는데 간혹 작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 탁월한 색채를 구사하고 자신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는 내심 그가 졸업을 하고 나면 좋은 작업을 하게 되길 바랬다.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개학준비를 하기 위해 들른 실기실에서 비에 젖어 낭만 가득한 도시 풍경이 담긴 그의 그림을 보았다. 뜨거운 여름 동안 먼 고향에도 가지 않고 산골짜기에 남아서 몰두한 그의 그림이 주는 감흥이 깊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뜻하지 않게 개다만 물감들이 어지러운 팔레트 옆에서 그가 참고로 했을법한 사진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한 태풍으로 물에 잠긴 지방의 어느 다리를 촬영한 신문에 난 보도사진을 스크랩한 것이었는데,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외계는 전적으로 자신이 가진 의식의 소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미쳤고, 그 의식의 소산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백남기 씨가 쓰러지던 날, 누군가 촬영한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서정성을 떠올렸다. 

이내 그 사진이 지닌 아픔과 의미를 알고 난 뒤에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시각만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는 감정의 폭은 얼마나 편협하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생각과, 그 무지와 편협이 가져다주는 위험한 결과들에 대한 생각이 한참을 우울하게 했다.    


감정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다. 그 감정에 옳고 그른 잣대를 함부로 들이댈 수는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 그 감정의 기저를 냉정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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