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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2. 2016

편견과 연민, 그 사이

선천성 희귀병을 가지고 있어 작달막한 키로 휠체어에 앉아서 짧은 생을 보내면서도 늘 웃음 잃지 않는 얼굴로 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스텔라 영. 아마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동시에 경이로운 듯 보는 시선이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치고 버거울 때, 때로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일 때 다소 불편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들을 보면 자신의 나태하고 불만족스러워했던 삶을 반성을 하고는 한다. 그 반성의 태도가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로만 끝나지 않고 그들을 열렬히 떠받들거나 어떤 특정한 선상에 기어이 올려놓고 찬사를 퍼붓는 숱한 사례들을 봐왔다.

‘오체불만족’을 출판하고 유명인이 되어 열정적인 사회활동을 하며 훌륭한 의지의 인간으로 존경받던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최근에 감춰져 있던 숱한 여성들과의 염문이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장애를 빗댄 비난들이 쏟아지기도 하면서 찬사는 분노와 비난으로 바뀌었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특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신체적으로 큰 불편 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의 불편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정작 불편한 것은 장애를 가진 몸보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에게만 맞추어진 세상과 그저 살아갈 뿐인 그들의 삶을 경외심 또는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스텔라 영의 불편했던 속내와 상관없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나 또한 기회가 닿는다면 조금 특별한 그들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많은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을 우리가, 그들보다 좀 더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으로 그들을 냉대하지도, 업신여기지도 말고 그들의 불편하고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개선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외도, 연민도 감추고 그저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할 것이다.

스텔라 영은 말했다.

“ 난 여기에 오래 살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잘 살기 위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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