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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21. 2016

광화문 연가

1.

오전부터 청와대 주변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정문을 시작으로 효자동 삼거리부터 경복궁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 일대까지 경찰버스는 차곡차곡 도로의 갓길로 정열을 시작해서 정오가 넘어서자 보기 드문 긴 행렬을 이루었다. 경복궁 담을 따라 삼청동, 인사동에 이르기까지는 사람들 또한 넘쳐났는데 인도 가장자리에 긴 행렬을 이루며 대기하는 경찰병력과 상관없이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듯, 한복을 입고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외국 관광객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고, 앳된 얼굴의 전경들은 오전부터 대기하느라 지쳤는지 멍한 표정으로 줄을 맞추어 하릴없이 길가에 정렬해 있었다.

큰길을 벗어나 삼청동 골목으로 들어서자 다른 세상에 온 듯, 아기자기한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선글라스를 낀 두 명의 중년 여인은 자전거 수레에 앉아, 앞에서 페달을 밟는 청년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가로수보다 더 길게 늘어선 버스의 대열에도 아랑곳없이 은행잎들은 농염하게 물들어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세명의 젊은 일본 여자들은 그 은행나무에 기대어 서로 순서를 바꾸어가며 깔깔거리는 웃음 가득한 사진을 담기에 바빴다.

 그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 속 배경에  끝없이 이어진 경찰버스의 행렬을, 훗날 그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2.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자 급격히 하늘의 색이 바뀌었고, 급격히 인파는 더 늘어났다.

거리 곳곳에는 아마도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을 상인들도 곳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초를 파는 상인들의 수는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늘어났고, 군데군데 주전부리를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인사동에서 커피를 마신 후,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요기나 할 겸 포장마차에서 닭꼬치를 주문하고 기다리니 중년의 외국 여인이 말을 걸었다.

주인이 자신에게 건네주려는 닭꼬치가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것보다 덜 익은것 같고, 크기도 작아 보일뿐더러 분명히 맵지 않은 것을 주문했는데 빨간 양념이 왜 묻어있냐고 따지듯 나에게 물었다. 얼떨결에 어설픈 통역을 하니 주인은 원래 잘 익게 되면 크기가 좀 줄어들고, 색깔만 빨간 것일 뿐 매운 것이 아니라고 나를 보고 말했다. 난처한 상황에 나는 괜한 오지랇으로 외국 관광객인 듯 하니 그냥 다음 차례로 익어 나오는 꼬치를 주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를 해도 완고한 표정의 주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짧은 영어로 나는 중년의 외국 여인에게 두 개의 꼬치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주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친절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3.

탑골공원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길엔 이미 차량통행이 금지되어서 사람들은 초를 밝히며 도로 위를 걸어갔고, 종각역을 지나고부터는 불어난 인파에 묻혀 떠밀리듯 조금씩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면서 틈틈이 일행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내 등 뒤에 바짝 붙은 청년은 그의 일행에게 오늘은 로또를 사기엔 글렀다며 실없이 웃으며 얘기했다. 새된 목소리의 가수는 애국가를 불렀고 뒤이은 사람들의 열창은 현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무시켰다. 그 옛날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불렀을 선조들의 애국가가 이처럼 절절했을까.


나는 인파에 갇혀 기차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물결이 넘실거리듯 움직이는 걸음 속에서도 희한하게 길은 열려서 큰 대로로 나와보니 밤은 꽤 깊어 있었다. 평상시엔 조금만 차가 밀리거나 방해가 되어도 사정없이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발 디딜 틈조차 버거운 사람들 속에서 그처럼 의연하고 질서 정연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 속에 섞여 텅 빈 도로를 바라보며 횡단보도에 서 있으니 저 멀리서 도로 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순간 좀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4.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내려 서울역 광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니, 광장으로 올라가기 전 첫 번째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곳에서 박사모와 애국단체, 어버이 연합 등의 피켓을 든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종북좌파 물러가라', '하야 반대'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구호가 새겨진 피켓을 흔들었다. 순간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니 위쪽 광장에 자리 잡은 더 많은 사람들은 밑을 내려다보며 '하야 하라'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반대와 찬성의 소리를 동시에 들으며 어리둥절해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을 손에 꼭 쥔 사람들과 피켓을 한 손에 든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이동하면서 동시에 '하야 하라'를 외치며 목소리를 합쳤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청년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어느 순간 서울역 광장은 열띤 응원을 펼치는 양상이 되어 궁지에 몰린 아래층 사람들을 향해 더 크고 많은 목소리들이 '하야 하라'를 외쳐댔다. '하야 반대'를 외치는 아래층 사람들은 이에 지지 않고 구호를 외쳐댔지만 더 큰 반대의 함성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상기된 표정의 노인은 눈시울까지 붉어지며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오래된 해병 군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돌부처처럼 '하야 반대'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서 있던 또 다른 노인은 급기야, 나라가 없으면 너희들도 없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5.

언젠가부터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수시로 감시하고 억압하던 이 나라에서, 국민들조차 자신과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이들을 강압과 물리적인 방법으로 위협을 가한다면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텐데 격앙된 고성 외엔 다른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서로가 상대를 향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그 외침은 상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억눌러져 있던 분노와 울분이 터져 나온 것이었고, 그것을 잠시라도 해소하는 동시에 그 목소리가 모여 거대한 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올라탄 기차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강을 지나쳤다.

캔맥주를 들이키며 급한 갈증을 해소하고 스쳐가는 검어진 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노인의 상기된 목소리와 눈물 글썽이던 노여움에 휩싸인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다만, 노인의 진정성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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