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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22. 2017

김실용씨의 견해

그는 규정짓기를 좋아했는데 예술작품을 평가할 때는 특히나 단호한면이 있어, 그 확신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몇 번의 만남을 가지고 해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그 단호함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소위 '된다, 안 된다'의 구분은 그것의 실용성과 상업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그 점이 부족할 때  그 작품은 그야말로 가망이 없는 작품으로 규정했다.

미술사나 현대미술의 흐름 등을 거론하며 나름 체계 있는 지식에서 나온 의견과, 울림 있는 목소리로 인해 충분히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의견의 끝은 늘 한결같이 상업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낡은 것을 거부하고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판매로 이어지는 않는 새로움은 가망이 없는 것이었고, 낡고 진부했지만 상업성의 요소를 잘 갖추면 '되는' 작품으로 규정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사람만큼 셀 수 없는 예술품들이 넘쳐날 텐데, 그 넘쳐나는 예술품들 중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작업실에서, 창고에서 방치되고 사라지는 것들의 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들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으며, 그 가치의 기준 또한 누가 규정할 수 있을까.

더구나 새로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던가.


그러한 모순적인 그의 의견은 예술작품의 평가기준 그 이전에 삶을 지탱하는 기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그의 내면에 깊게 뿌리 박힌 실용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삶이 제한된 가치나 사상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그 삶에서 비롯된 예술작품들 또한 그 '무엇'으로 쉽게 규정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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