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석양이 하루를 마감할 때쯤이면 그곳엔 어김없이 소박한 분수 쇼가 시작된다.
그 아담한 분수를 원으로 둘러싸고 곳곳에 자리 잡은 벤치에는, 해를 마주한 쪽의 벤치를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늘 누군가라도 앉아있다.
음악도 없이, 잘 훈련된 군무처럼 각각의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고만고만한 높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유연한 곡선들을 그려내며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줄기는 솟아오를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존재감을 발한다. 태어나자마자 금세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듯, 생성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생명을 가지는 존재가 된다. 그 부산하고 소란스러움은 아주 짧게 정해진 유한한 시간이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어떤 절실함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 둘레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석양을 받아 한껏 농염해진 연인의 머리카락을 애무하며 밀어를 나누기도 하고, 부지런히 돈을 각출해 통닭이며 피자 따위를 배달시킨 한 무리의 여학생들은 슬금슬금 다가오는 비둘기에 기겁을 하면서도 깔깔거리며 게걸스럽게 그 음식들을 먹어치운다.
분수대 주변의 원을 따라 걷는 노인의 느린 산책은, 그 옆을 스치며 놀란 비둘기를 사정없이 쫓아가는 개구진 소년의 환한 얼굴에 비친 황금빛 석양이 원래 저토록 슬픈 색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