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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21. 2017

그래도,

내면을 잘 들여다보지 못한 채 지나가는 하루는 그 무미건조함보다 커다란,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그림자가 떡하니 등 뒤에 버티고 서 있는 기분이다.

갚아나가야 할 대출금과,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안위와, 퇴출의 위기에 몰리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가진 고뇌를 공유하지는 못하는 내 삶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공통된 삶에서 한 노 작가가 이야기한 밥벌이의 지긋지긋함을 떠올린다.


화가를 꿈꾸었던 친구는 아주 가끔 만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했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견함과 동시에 적의 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는데, 그 칼끝 같은 감정이 느껴질 때면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친구는 자신이 그토록 빨리 그림을 접었던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일 뿐이라며, 지금도 여전히 꿈을 접지 않고 활동하는 자신의 동기들은 하나같이 부유한 집의 자식들이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물려받을 것 없는 나를 걱정하면서 잘 버티고 있다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위로했다. 그 말끝에 항상 뒤따르던 친구의 눈빛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늘 걱정보다는 적대감이, 위로보다는 부러움이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묵묵히 응원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막연히 응원과 지지만 하기에는 너무 일찍 접어버린 자신의 꿈을 생각하니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그림을 판 돈으로 술을 사 줬을 때 친구는 새벽에 인사불성이 되어 술집에서 난동을 부렸다. 술집 주인의 넓은 아량으로 잘 마무리되고 난 뒤, 여전히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며 친구는 말했다.

"미안하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그림 따위야 그리지 않고 살아도 그만이고 꿈같은 것 꾸지 않고 그저 살아가도 그만 일 텐데, 그러면 우리의 삶이 마냥 편안할 것인가.

그래도, 가슴에 별 하나는 품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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