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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06. 2017

지중해

자신의 눈앞에 놓인 그림을 볼 때나, 한 편의 영화에서 받은 벅찬 감동 앞에서 어느 순간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어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따뜻하고 경쾌한 지중해의 음악이라도 들려온다면 그 순간의 감미로움은 때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가상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순간은 사드 배치의 논란이나, 503호에 수감되어 있는 올림머리 여왕의 모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 여왕은 독방에서 유유히 왈츠를 추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 이르게 되면, 때때로 나태해진 삶에 대한 반성은 괜한 기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mediterraneo'를 20여 년 만에 다시 감상하고 나는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촬영한 영상을 접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고작 한 조각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잊고 있었던 진리와, 그 진리를 틈만 나면 다시 잊어버린 채 삶의 허영에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영화 'mediterraneo' 안에서는 물론, 그 수많은 먼지의 부유물들이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전쟁이 끝난지도 모른 채 또 하나의 작은 우주 안에서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또 다른 삶의 모습일 것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되었을 뿐 그 작은 섬안에서 그들은 기본적인 욕구들을 어느 정도 충족하면서 살아간다.

한 여자를 공유? 하는 것 또한 바실리사와 안토니오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누리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이, 풍족하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삶과 비교해 봤을 때 오히려 더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슬픔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한 가지는 기억 때문이 아닐까.

처음부터 그들이 그 작은 섬에서 성장해 왔다면, 또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푸르른 지구 이외의 행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또한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들도, 우리들도 살아가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슬픈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뒤돌아 보며 떠나가던 옛사랑을 생각했다.

이 작은 지구 안에서 너무 가녀려서 슬펐던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 우리가 지중해 어딘가에 꼭꼭 숨어 살았다면, 우리의 생이 한낱 떠도는 먼지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체 안락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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