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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10. 2017

풍경 3

일요일 오후, 다섯 명의 청소년들이 횡단보도 앞 문 닫은 점포 앞에 모여 있었다.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채 환자복을 입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남자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덩치 큰 남자아이 두 명과, 화장을 짙게 한 여자 아이 두 명이 그 둘레에 모여 연기가 자욱하도록 연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환자복을 입은 남자아이는 기세가 꺾이지 않으려는 듯 눈을 피하지 않았고, 그 둘레에 모여 담배를 태우던 아이들도 덩달아 시선을 나에게로 옮겼다.

옆을 지나가던 젊은 연인은 찌푸린 인상의 남자 손을 여자가 재빠르게 당기며 걸음을 재촉했고, 자전거를 탄 중년의 남자는 시선을 길 건너에 고정한 체 애써 외면했다.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화장을 짙게 한 여자 아이는 일부러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딴청을 피웠다. 여기서 담배를 태우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얼마나 피해가 크겠냐는 내 말에, 의외로 두말도 하지 않고 동시에 우르르 몰려 모퉁이를 돌아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 담배 맛도 모를 텐데 그저 영웅 심리나 호기심에 어울리지도 않는 담배를 꼬나물고, 기성세대에 이유 없는 반항을 보이는 모습들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반항은 성장통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가정의 불화나 어른들의 억압에 의해 비롯되는 것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데서 오는 결핍과 분노가 반항, 일탈, 폭력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사실 성장기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과, 공공장소에서의 피해를 이유로 그들을 타이르는 것 외에 담배를 태우는 청소년들을 탓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법적으로 정해놓은 나이를 들먹이고, 어른 앞에서의 예의가 아닌 것으로 그들을 질책한다면 반항은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담배도, 술도, 콘돔도 모든 것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았고, 가치관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인 교육도 없이 무조건적인 제제와 질책만 가하는 것으로 그들의 탈선을 막을 순 없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으로 북한의 연이은 도발 소식쯤은 뒷전으로 밀려날 만큼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인터넷에선 연일 뜨거운 공론이 오갔고, 이참에 소년법까지 개정해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뜨겁다.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잔인함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라 종종 있어왔던 일이지만, 친구를 상대로 그토록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 가해자들 속에 내재된 분노와 반항심이 그릇된 방법으로 표출된 것이라 보인다. 또한 그 폭력의 잔인함은 어른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아무런 방어책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지금의 폭력성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유 없는 불안과 혼란에 몸서리쳤던 십 대를 겪지 않고, 그저 성인이 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많은 성인들은 껍데기만 성인에 불과한 여전히 모자라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잘못은 엄중히 꾸짖되, 그보다 앞서 더 중요한 일은 꿈으로 가득 찬 수많은 아이들을 한쪽으로만 몰아서 숨통을 조이지 않는 일이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간섭이 아닌 관심과 사랑만이 그들의 이유 없는 반항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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