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May 08. 2017

어버이의 선거

막무가내식 언변만큼이나 막무가내식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 대선 후보의 밉살스러운 인상과 탁한 눈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몹시 답답하다.

빨갱이라는 한마디에 치를 떠는 노년층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고, 검증되지 않은 뉴스들을 막무가내로 퍼뜨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들에게 적대적인 언행과, 예고된 보복(?) 같은 경고를 내세우면서 결국엔 그 모든 가치들을 안보라는 거대하고도 위협적인 단어로 포장해 현혹하는 그를 어떤 이들은 박정희나 전두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찬양하기도 한다.

이 나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통치 아래 재단하고 통제해야만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오랜 지배와 세뇌 아래 길들여져 온 이 땅의 노인들인 우리 어버이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치미는 분노와 연민이 동시에 일어나서 때로 나는 묘한 전율에 휩싸이기도 한다.


문경에 위치한 석탄박물관에 가 본 적이 있다.

가난에 휘청거렸던 경제를 일으키는데 단단히 한몫했던 시절의 호황과 아픔을 고스란히 기록한 그곳엔, 한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성실히 일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이 환한 웃음을 띤 채로 액자 속에 남겨져 있다.

막장에서의 외로운 사투와, 곤히 잠든 남편을 애써 깨워 출근길을 배웅하는 아내의 심정, 아무런 보호 장치도 설명도 없이 분진에 막무가내로 노출되어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이제는 노인이 된 그분들의 삶들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는 그곳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비단 그곳의 광부들뿐만 아니라 그 시대 지독한 독재 아래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 이 나라를 일으켰을 지금의 노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이 이토록 윤택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토록 눈물 나는 고생들도 집단 체면에 걸려 잊어버린 것일까.

자신들의 지독한 고생을 발판 삼아 수많은 사람들을 유린했던 독재자의 치적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고, 그 독재자의 후광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서 까만 선글라스 끼고 근엄한 표정만 지어도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 어렵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다 자식 때문이라며, 보행기를 끌고 새벽같이 교회로, 절로, 성당으로 다니면서도 오직 제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그 심정의 눈곱만큼이라도 진정성 있는 후보를 선별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이토록 절망적이지는 않을는지.


이제는 힘없고 지친 우리의 어버이들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궁지로 몰려서 절망적이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정말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것은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편성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