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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12. 2017

바라본다

1.

누군가 한 개인의 분노가 이 사회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불합리나 모순 등에 대해서 한 개인이 분노를 느낄 때, 이미 그 분노의 시작이 변화를 위한 출발이 된다.

분노는 우선 한 개인의 얼굴 표정에서 드러날 것이고, 가까운 지인들과의 대화 도중 그것이 화제에 올라 때론 열띤 토론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 분노의 공감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오늘날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sns 등을 통해서 또 다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결국 변화의 시작은 한 개인의 분노에서 시작된다.


암울했던 독재시대에는 차단되고 통제된 언론과, 앞서간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어쩌면 생소했을 사회의 분위기 탓에 어떤 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선택해야 할 결정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급속도로 발달된 정보화의 영향으로 누구든 손쉽게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뉴스들을 접하고 여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물론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그 점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뉴스들을 조작해 끝도 없이 교묘히 퍼뜨리지만,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정보들을 잘 접하고 분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본다.


가급적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사회 안에 살아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강한 분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2.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나는 밤늦은 시간에 침울한 기분으로 귀가했는데 당시 하트 가득한 눈으로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아들의 밤늦은 귀가보다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더 기뻐하시며 촉촉해진 눈망울로 환하게 나를 반기시던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그저 실소만 하였다.

그때 나는 내 판단은 물론이고 당시의 박근혜 씨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그래서 몇 년이 지난 뒤 모두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성공한 첫 여성 대통령의 퇴임을 보게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이미 결판이 난 듯한 결과로 인해 약간 싱겁게 끝난 이번 대선에서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는 능구렁이 같은 후보에 대한 결집된 보수층의 지지가 대구, 경북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만 월등해서 다행히도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소식과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TV에서 접하고, 어쩌면 나는 몇 해 전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마음과 비슷한 입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해묵은 응어리가 씻겨나가는 기분과 함께 새 대통령이 된 그분이 앞으로 짊어지게 될 엄청난 무게들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


거머리 같은 기득권들의 틈바구니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했었던 故노무현 대통령의 아픈 전철이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를, 그래서 굳게 다문 새 대통령의 입술과 결연한 눈빛에서 우리는 인자함 속에 감춰진 강단과 굳은 의지를 확인하고 더불어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도 막무가내식 억지와 궤변으로 임기 내내 괴롭힐 기득권들의 철면피 같은 면상들이 너무도 쉽게 그려져서 역겹기도 하지만, 그분의 굳센 의지만큼 많은 국민들도 한 단계 성숙해서 이제는 예전처럼 어리석게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의 후회와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고, 5년이 지났을 때 故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은 그저 아련한 추억이 될 만큼 새 대통령의 행보가 성공적이어서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길 바라본다.


3.

예로부터 광장은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그 광장의 역사가 곧 그 나라의 역사가 되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2 월드컵 때 전 세계가 놀랄 만큼 쏟아져 나온 우리 국민들이 붉은색으로 광장을 메웠을 때도, 박근혜 씨를 탄핵하기 위해 촛불 가득한 염원을 안고 광장을 메웠을 때도 언제나 광장은 열려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당장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좋아질 순 없을 것이고 산적해 있는 문제들만큼 곳곳에선 여전히 아우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때에도 여전히 광장은 열려 있을 것이고 우리는 또 어김없이 그곳으로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다.

기왕이면 아우성보다는 환호성을 지를 일이 훨씬 많아져서 기쁨에 못 이긴 사람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일이 넘쳐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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