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빼빼로 회사의 마케팅으로 판을 치는 11월 한국풍경.
영국에서는 빨강 양귀비 배지를 달고 다니는 신사 숙녀의 바쁜 걸음걸이로 11월 풍경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11월 11일은 공식적으론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보행자의 날, 농업의 날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지나가는 아무개에게 물어본다면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가 아니냐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90년대 영남지방의 학생들이 빼빼로처럼 길고 날씬해지라는 뜻으로 나눠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빼빼로데이는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 전략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농업의 날의 주인공인 농민들의 땀 흘린 노력이 상업적인 마케팅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빼빼로데이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1918년 11월 11일 11시에 1차 세계대전의 휴전협정이 맺어진다. 영국과 영연방은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사상자를 추모하기 위해 11월 11일을 “현충일(Remembrance Day)”로 지정했고 현재는 1,2차 세계대전에 다른 여러 충돌에서 희생된 모든 이를 기리는 날로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매 11월 둘째 주 일요일을 “현충일 일요일(Remembrance Sunday)”로 정해놓고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행사로는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으로 연결된 “화이트홀(White Hall)”대로에 1차 대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100년 전에 세워진 “세노타프(Cenotaph)”기념비에 영국왕, 총리등이 양귀비 화환을 올려놓으며 오전 11시에 2분간 죽은 이들을 기리는 의미로 묵념을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묵념 전후에 영국적인 석조건물을 배경으로 진입이 통제된 화이트홀을 행진하는 질서 정연한 국악대, 영국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풍경인 빨강 군복에 검정 곰털(Bear Skin) 모자를 쓴 영국 왕실 근위대의 모습, 가슴에 잔뜩 휘장과 훈장을 달은 군인과 베테랑등 여러 행렬을 구경하는 것 또한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보는 듯 볼 만하다.
공교롭게도 11월 둘째 주 일요일에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가는데, 눈에 띄는 펍(Pup)마다 꽉꽉 채운 검은색 정장에 빨강 양비귀 배지와 수많은 훈장을 매단 많은 젠틀맨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영국의 현충일은 다른 말로 “양귀비 날(Poppy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양귀비는 영연방 국가들의 현충일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의 국토는 폐허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었고, 나무와 풀은 불타버렸다. 한 캐나다 군의관이 최초의 대규모 화학무기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퍼르 전투(the Second Battle of Ypres)”의 초토화된 땅에서 그 이듬해 빨강 양귀비가 자라나는 것을 보았다. 죽음의 땅에서 올라오는 빨간 생명의 힘을. 그가 영감을 받아서 쓴 시 “플랜더스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고, 빨강 양귀비는 희망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상징이 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베테랑들은 많은 외상과 정신적 내상으로 사회에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베테랑의 가족과 자녀들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영국 “재향군인회(British Royal Legion)”가 설립되어 평화와 희망의 미래를 상징하는 양귀비 배지를 팔아 참전 용사들과 가족등을 도울 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양귀비 추모 모금운동(Poppy Appeal)”라는 캠페인 아래 11월이 다가오면 슈퍼마켓, 상점, 하물며 초등학교 학생들도 나서서 다양한 재질의 양귀비 배지를 판매하여 재향군인회에 기부하는 자발적인 모금에 나선다.
한국에도 많은 기념일 있다. 그중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지정된 6월 6일 한국의 현충일은 베테랑과 정부 군관료들 사이에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의미가 내 살에 닿을 만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국경일이라는 의미가 직장인들, 학생들의 쉬는 날로 퇴색되지 않고 있나 생각해 본다.
영국에선 초등학교 학생들도 나서서 베테랑의 전후 복지를 위한 양귀비 배지를 판매하고 나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의미와 함께 남아있는 분들의 사회 복귀와 재활을 돕는데 온 국민이 피부로 느끼며 나선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빨강 양귀비를 달고 다닌다.
–
한국도 우물 속의 기념일보단, 좀 더 모든 국민의 의식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분위기가 어린 나이부터 교육이 된다면 어떠한 역사교육보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양귀비처럼 결속될 매개체와 디자인과의 협력이 있어야 이루어질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