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현재의 나를 다듬는다.
비가 오는 런던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뜬금없이 내 무의식이 돌아가신 성북동 할머니집
원형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사진을 남발하던 시대가 아니라서 이제는 나와 가족 몇몇의 기억에서 밖에 존재하지 않는 돌아가신
할머니 집은 계단 위로 올라가면 있는 2층짜리
양옥집이었다.
벨을 누르면 항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던 파란색
철문을 지나면 집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 왼쪽에는 뒷간이 있었고, 오른쪽에 네모 반듯하게 모양을 낸 큰 관목이
있었다. 그 관목 뒤에는 깻잎과 배추를 씻던 수도꼭지와
장독대들을 보관하던 반지하 창고가 있고, 메주가
주렁주렁 걸려있었던 작은 마당이 있던 게 기억난다.
30센티 정도 지면에서 올라가 있던 집내부는 벽면과
바닥 모두 나무패널로 되어있었다. 복도 오른쪽에는
다이얼식 전화기가 있었고, 정면에 큰 거북이 조각과
내가 무서워했던 호랑이 그림이 걸려있었다.
나무바닥은 항상 맨질맨질 윤이 나서 슬라이딩하며
놀기 좋았고, 아빠와 고모방이 있었던 2층은 너무
고요해서 난 항상 올라가기를 무서워했었다.
복도 끝 오른쪽이 내가 기억하고 싶은 할머니의 부엌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참 현대화된 할머니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요리솜씨가 끝내주셨다.
서울출신이신 할머니의 음식은 짜지도 맵지도 않았고,
항상 정갈하며 과하지 않았다.
하얀 레이스와 유리가 깔려있던 원형 테이블에서
주말마다 방문한 우리는 항상 같은 순서로 앉아서 밥을
먹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산에 올라가 약수를 떠 오셨을
만큼 부지런하셨던 그분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
밥공기와 국만 빼놓고 테이블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었다.
손자가 좋아한다고 도깨비 시장 가서 사 오셨던 미국산
소시지 통조림의 기억만 빼면 모든 것이 정갈한
한국음식이었다.
손수 담근 간장에 자작 담긴 손으로 찢어놓은 장조림과
계란, 가지런히 썰어 놓으신 할머니표 배추김치,
총각김치, 세상 어느 나라 음식에서도 그 비슷한 맛을
설명할 수 없는 동치미 국물, 오징어 젓갈, 완벽했던
콩자반, 조청으로 낸 끈적한 맛이 아닌 세련된 맛을
풍겼던 멸치볶음과 연근조림, 너무 맛있어서 내가 마구
먹다 체해서 한동안 깻잎을 쳐다도 안 봤던 그 맛있었던
깻잎무침, 항상 완벽한 높이와 결을 뽐냈던
계란찜 뚝배기.
이 모든 것을 보고 앉으면 찰진 밥과 국을 앞에
가져다주셨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의미 없이 하던 그 시절.
새로운 것만 굶주려하다가 내가 밟아온 소중함을
늦게서야 깨닫는 나는 그 할머니의 손맛을 다시 맛보고
싶지만 벌써 너무 멀리 와버려서 이렇게라도 더듬더듬
써놓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것 같다.
하지만 신기하게 글로 남길 수 없는 기억의 맛은 생생하다.
오늘 그 음식들이 참 그립다.
추억으로 현재의 나를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