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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Jan 16. 2020

한국으로 귀화한 '휠라(FILA)'의 성공스토리

휠라 브랜드 스토리 - FILA Brand Stroy

https://youtu.be/NBkKqkJigfw

2007년 패션업계에 전례 없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것이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에서 지금은 한국 브랜드가 된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있습니다. 휠라입니다.


1911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휠라는 가내수공업으로 이너웨어를 주로 생산하는 작은 브랜드였습니다.


1911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휠라'

1972년 자동차 회사 “피아트”에서 인수하면서 제대로 된 브랜드의 형태를 완성하는데, 이때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로고가 만들어집니다. 차가운 포도주의 파란색과 뜨거운 태양의 빨간색으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죠. 그리고 이 휠라 로고는 전 세계를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자동차 회사 피아트에 인수됐었던 휠라
피아트가 인수하면서 새롭게 만들었던 휠라 로고

대한민국 또한 휠라 열풍이 휘몰아치는데, 그 중심에는 휠라 그룹의 회장 윤윤수가 있습니다. 신발업체 화승의 이사로 있던 시절, 미국 출장 중 휠라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휠라 그룹 윤윤수 회장

휠라의 잠재력을 본 윤 회장은 기존에 미국 내 라이선스를 갖고 있던 ‘호머 알티스’를 찾아가 제안을 합니다. “내가 한국에서 휠라 운동화를 만들어올 테니 미국에서 같이 팔아 보시겠습니까?”


호머 알티스를 만난 윤윤수 회장

그렇게 “Made in Korea” 마크를 단 휠라의 어글리 슈즈가 탄생했고, 미국 시장에서 대히트를 치게 됩니다. 나이키, 리복과 더불어 미국 내 3대 스포츠 브랜드로 우뚝 섰고, 이탈리아 휠라 본사는 윤 회장에게 휠라 코리아 설립이라는 엄청난 제안을 합니다. 1991년의 일이었습니다.

1992년 휠라 코리아는 설립과 동시에 한국 시장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해마다 평균 8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법인이 되었습니다. 휠라의 엔리코 프레시 회장은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를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죠.

그리고 2007년 M&A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당시 휠라 그룹은 연 6,000만 달러의 적자를 낼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는데, 윤 회장은 4억 5천만 달러에 ‘이탈리아의 자존심’ 휠라를 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국내 법인이 글로벌 브랜드 본사를 인수한 첫 사례가 되었죠.

국내외에서 탄력을 받아 고공행진을 하던 휠라는 2011년부터 소비침체와 트렌드 변화에 밀려 서서히 하락하게 됩니다.


2011년 부터 조금씩 국내 매출이 하락하기 시작했던 휠라코리아

실적 하락보다도 휠라에게 더욱 악재로 작용한 것은 ‘휠라 다움’의 상실이었습니다. 토닝화가 유행할 때는 ‘이온 토닝화’, 아웃도어 열풍일 때는 ‘휠라 아웃도어’라는 이름으로 ‘트레킹화’를 내놓았습니다. 시류에 편승한 제품들의 출시는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휠라가 ‘아재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죠.


아재 브랜드화 됐을 당시 휠라코리아의 광고

휠라가 실적 부진에 빠져 있을 때, 윤윤수 회장의 아들, 윤근창 휠라 코리아 대표는 2015년 휠라USA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 작업을 시작합니다.


윤근창 휠라 코리아 대표

리뉴얼의 방향은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밀레니얼 세대 타깃

두 번째는 콜라보레이션입니다.

휠라는 기존 타깃인 40-50대를 포기하고,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10-20대인 Z세대를 철저하게 분석합니다.

그들이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 메가트렌드로 온 뉴트로에 주목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헤리티지를 살려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휠라의 100년 역사에서 뉴트로에 걸맞은 컨텐츠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는데요.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비외른 보리선수의 테니스 수트부터 휠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어글리슈즈까지. 이들을 복각한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온 제품이 코트 디럭스와 디스럽터2 입니다.

비외른 보리선수(좌)와 어글리수즈(우)


테니스화를 복각한 ‘코트 디럭스’는 출시 1년 만에 100만 족 이상 판매되었으며, 1997년 출시됐던 어글리슈즈 ‘디스럽터’를 20년 만에 재해석하여 출시한 ‘디스럽터2’는 1년 반 만에 1000만 켤레 이상 판매를 기록하며 휠라의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습니다.


코트디럭스(좌)와 디스럽터2(우)


또한, 휠라가 갖고 있었던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콜라보레이션’입니다. 휠라는 얼마 전 래퍼 도끼의 헌정무대로 화재가 된 미국의 힙합그룹 ‘우탱클랜’과의 콜라보뿐만 아니라 가장 핫한 스트릿웨어 브랜드 ‘슈프림’과 2007년 협업 컬렉션을 발매했을 정도로 ‘콜라보레이션’에 대해서 열려 있는 브랜드입니다.


슈프림과 콜라보한 휠라 상품

휠라의 콜라보 작업 중 2018년 게임방송 BJ ‘우왁굳’과의 작업은 절정을 이뤘는데요, 출시 전날부터 매장 앞에는 줄을 섰으며, 무신사 준비수량은 15분 만에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우왁굳과의 콜라보레이션


또한, 고샤 루브친스키, 펜디 등의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펩시, 메로나, 츄파춥스 등 식품업계 와도 진행하며 패션에 민감한 10-20대에게 업계를 넘나드는 콜라보를 통해 익숙함과 동시에 신선함을 선사했습니다.

다양한 콜라보를 시도하는 휠라


휠라는 실적으로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2015년 8000억 원이던 매출이 2018년 2조 7600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매출 ‘3조 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휠라가 가진 역사와 잠재력,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경영진. 패션업계가 불황임에도 휠라의 행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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