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비는 몰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냥 쏟아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쏟아졌다. 잔뜩 찌푸린 구름이 떼를 지어 다니더니 어딘가에서 핀이 떨어져 나갔는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으로 달려와 괜한 분풀이를 한다. 투두둑! 투두둑! 원투! 원투! 잽! 처럼 그렇게.
“이런 날은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
정우는 스스로를 응원하듯 말을 뱉었다. 어느 단어에서 반응한 건지 휴대폰에서 삐릭!! 소리를 낸다. 뭔가 기다리는 화면이다.
“오늘 날씨!”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그래, 그래. 지금은 너밖에 없다....”
창밖은 계속 비가 내렸다.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시선은 자꾸 바깥으로 향했다.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잠금화면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세탁기를 돌리고 싶어졌다. 베란다로 향했다. 빨래가 담겨있는 통을 세탁기에 탈탈 털었다. 우르르 쏟아진 빨랫감이 서로 얽혔다. 습관대로 풀어내려다 멈췄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베란다 창에도 비가 흘러내렸다. 세탁기 속으로 투명한 물이 흘러들어왔다. 물은 빨래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더 짙은 색으로. 하지만 그녀를 만나러 나갈 때 입던 옷은 아직이다. 다 차오른 세탁조는 거센소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켜진 빨래는 한꺼번에 움직였다. 물들지 않은 옷이 사라졌다.
돌아와 앉았다. 여전히 비는 내렸고, 세탁기가 웅웅 거리며 빗소리의 사이사이를 채웠다. 다시 폰을 만지작거렸다. 잠금화면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직까지 지우지 못한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화면을 확인하고는 껐다. 빗소리는 계속되었고 세탁기는 웅웅 거리며 분주했다. 혼자인지 아닌 건지 혼란스러웠다.
“오늘 날씨?”
창문으로 빗소리가 울렸고, 베란다엔 세탁기가 돌았다. 핸드폰만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