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가는 일정은 여행같다. 한시간이라도 말이다.
멀리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지도를 이용해 거리를 보니 어떻게 가도 한 시간이 넘어가는 거리. 일단 책 한 권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어떤 교통편을 이용할지 고민한다. 선택을 위해 약간의 조건을 떠올렸다. 1. 책을 읽을 것이다. 2. 계속 앉아 갔으면 좋겠다. 3. 교통편에서 하차한 뒤 목적지까지 좀 걸으면 좋겠다.로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버스가 빠진다. 나는 버스에서 책을 읽지 못한다. 멀미는 아니지만 어지럽다. 또한 한 줄, 한 줄 읽을 때 머리에도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밖을 보는 게 났지. 뭔가를 읽는다는 것은 음... 그래서 지하철로 결정!
탑승하고 예상대로 앉았고 환승역에서도 앉아 갈 수 있었다.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완독. 계절의 변화를 사진과 글로 담은 책이어서 잘 읽혔다. 지하철의 흔들림이 읽기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는 게 좋다. 또한 하차 후 목적지까지 적당히 걸어갈 수 있어서 처음 생각한 조건은 다 맞춰졌다.
일을 잘 마쳤다. 이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선택. 대신 올 때 내렸던 역과는 다른 역을 찾았다. 낯선 동네에서 걷는다는 건 재미나다. 어떤 재미를 발견할지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는 길은 사각형 구획으로 나눠놓은 신도시의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간판이 있었고, 번잡했다. 다양한 숫자들, 글자들, 그리고 색들이 어지럽게 빌딩을 에워싸고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익숙한 간판도, 낯선 간판도 즐비하다. 정신없는 사인들을 보며 걷다 보니 역에 도착했다. 걸어온 길을 떠올렸다. 많은 간판들 신도시지만 생각보다 적은 사람. 평일의 한 낮 풍경. '혹시 밤이 되면 달라질까?'란 호기심이 일었다.
역사에 들어온 열차가 움직이자 나는 갑자기 올 때와는 달리 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왠지 그게 더 빨리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하고 몇 개의 역을 지나 하차했다. 아직 목적지와는 먼 곳. 올 때 책은 다 읽었기에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왠지 버스가 좀 더 빨리 갈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깨달았다. 지하철이 더 빠르구나!!! 이제야 안들 뭘 어쩌겠는가.... 정류장에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사실 버스를 타려고 한 이유가 지하철은 지하로 운행하는 경로가 있고, 지상으로 운행하는 경로가 있다. 지상으로 움직일 때는 창밖을 바라보는 게 신이 난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다채롭기도 하고, 시선이 정신없이 움직이니까. 반대로 지하로 운행될 때는 그냥 먹먹해진다. 볼 수 있는 것이 깜깜함 뿐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는 길은 지하가 더 길게이어 졌다. 반면 버스는 온전히 길 위로만 갈 테니 타는 순간부터 창밖을 바라볼 수 있다. 여행이다. 새로운 동네를 지나는 버스라면 더욱 그렇다. 낯선 풍경. 다른 소리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버스를 타는 동안 여행을 즐기느라 재미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익숙한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제 다 도착했나 보다. 여행이 끝나기 시작한다.
한 번씩 시간을 들여 먼 길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여행이란 걸 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낯섦이 건드리는 감정이 때론 마음을 흔든다. 그 느낌이 좋다. 그래서 한 번씩 겪는 멀리 가는 일정을 좋아하나 보다. 오늘도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