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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Nov 20. 2019

비상구

손바닥 소설

화재 경보가 빌딩 전체로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관리자로 보이는 몇몇 사람이 급하게 손짓하며 밖으로 대피하라 소리쳤다. 우리는 주변을 살피다 몰려가는 사람들을 피해 비상구로 향했다. 통로의 계단은 겁에 질려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같이 움직이면 그 무리에서 갇힐 것이 분명했다. 그때 우리의 눈에 비상구가 보였다. 

“야! 저기.”

세훈이 먼저 말했다. 서로를 번갈아 보고 서둘러 비상구로 달렸다. 비상구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녹색 불빛만이 중간 층계의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실수한 거 아냐?”

“비상구인데 나갈 수 있겠지... 설마?”

“그래도 너무 어두운데...” 멈칫거리던 지호가 말했다. 

“다시 나가자 여긴 아무래도 아닌 거 같다.” 철민이 말을 보탰다.

“그래 나가자.”

“비상구라고! 비상구. 다들 왜 그래?” 세훈이 소리쳤다.

비상구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3명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이리저리 퍼져나갈 뿐이었다. 셋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난간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깜깜할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위쪽도 마찬가지였다.

“내려가 볼래?”

“그럴까? 어쩌지?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네가 이쪽으로 오자고 한 거잖아?”

“가만히 있어 봐.”

“야! 어쩌려고.”

“너무 조용하잖아. 문에 손을 대도 뜨겁지도 않고, 이건 괜찮다는 신호라고.”

지호가 문을 밀었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다시 힘줘 밀어도 똑같았다.

“안 열려.”

“당겨야 하는 거 아냐? 아까 밀고 들어왔잖아!”

지호는 문을 힘껏 당겨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눌러서 당겨야 하는 건가.”

철민이 지호를 밀치며 가로로 길게 만들어진 손잡이를 누르며 당겨 보았다. 여전히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문이냐고?”

철민의 목소리가 비상구 천체로 울렸다. 이제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안테나는 모두 죽어 있었다.

“전화도 안 된다고? 이게 무슨 비상구야. 젠장!”

철민이 전화기를 던지려는 걸 지호가 말렸다. 세훈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알아!!”

“그만해. 그런다고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세훈은 알고 그랬겠냐고.”

철민의 큰 소리에 세훈은 차분해졌다.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아? 아까 그렇게 난리가 났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해.” 지호가 말했다.

철민이 문으로 다가가 밖의 소리에 집중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로 차고 손으로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만 잠시 울리고 잠잠해졌다.

셋은 바닥에 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서 죽는 거야?”

“왜 그런 말을….”

“그래 죽긴 우리가? 쳇! 누가 올 거야. 분명히. 이참에 잠이나 좀 자야겠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멀리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세훈은 눈을 떴다. 귀를 기울였으나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또 얼마나 흘렀을까 아까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아까보다 가까이에서 들렸다. 서둘러 철민과 지호를 깨웠다.

“야! 일어나 봐. 일어나.”

둘은 뒤척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문이 긁히며 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렸다. 불안해졌다.

“일어나라고!!!”

“으… 음…,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둘은 깊이 잠들었는지 힘겹게 일어났다. 

“자꾸 소리가 들려. 이상한 소리가….”

“환청 아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무슨 소리가...”

드그극! 순간 셋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들려?”

“그래, 멀지 않아.”

지호가 갑자기 문 앞에 서서는 문을 붙잡았다.

“야 인마 뭐해?”

“몰라서 물어. 막아야 할 거 아니야. 뭔가 이상해!.”

“불난 건물에 뭐가 이상한 게 있겠어? 구하러 온 거겠지, 안 그래?”

그때였다. 지호의 몸이 뒤로 밀리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둘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재빨리 지호와 같이 문을 밀었다. 문은 점점 셋을 밀어냈다. 밀어내는 힘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셋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구조대원 아닐까?”

“아니면?” 지호가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카라랑 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쿵! 하고 문이 넘어갔다.

큰 덩치의 외눈박이 얼굴이 쑥 하고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아악!!”



흰색의 밝은 천장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지호는 먼저 일어난 철민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세호도 발견했다.

“여기 어디지?”

“병원 아니야?”

그때 한쪽 구석에 있는 문이 열렸다. 사람의 형체가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모두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얀 가운의 의사처럼 보였다.

“위험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여기에 없을 수도 있었어요.”

그제야 세호도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셋은 의사를 바라봤다. 

의사는 그때 건물이 무너졌다고 했다. 단지 비상계단 즉, 우리가 있던 곳만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했다. 철문은 비상문이지만 건물 관리자가 폐쇄하다시피 개조를 해 놓은 거라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고 했다. 물론 개조로 인해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밖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으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방관이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 세명만 살아남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잿더미 속으로 묻혔다고 했다. 철민과 세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호는 그 말이 이상했다. ‘나올 수 없는 비상구라니….’

“좀 더 쉬세요.”

세훈과 철민은 안심했는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의사는 문을 열고 나갔다. 지호는 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닫히는 문 사이로 웃고 있는 눈이 하나인 얼굴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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