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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Nov 19. 2019

가려움.

손바닥 소설.

배 부근을 긁으며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귀하와 우리 회사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슨 회사들이 똑같은 매뉴얼을 가졌는지 똑같은 답변 문자였다.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그리고 그전에도. 그때마다 배가 가려웠다.

그 후로 긁기 시작했다. 붉게 변한 피부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삼일 전, 배꼽에서 왼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 떨어진 곳에 갑자기 하얀 각질이 동그랗게 일어나더니 딱딱하게 피부 위로 올라왔다. 그러다 가라앉는가 싶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가렵기 시작했다. 긁어도 긁어도 가려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오늘 피가 터졌다.

-그만 긁어, 피나잖아.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멈춰 있던 가려움이 다시 시작됐다. 검지 손톱으로 아래에서 위로 긁어 올렸다. 시원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가렵기 시작했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계속해서 아래에서 위로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만 긁으라고!! 왜 그래!! 미쳤어!

긁기를 멈추었다. 손톱 밑에 피가 묻어났다. 빨간 점이 점점 배꼽 크기로 커지는 것 같았다. 잔소리가 잠잠해졌다. 가려움도 잠잠해졌다.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병원에 갔다. 병원에선 건선이라고만 했다. 가려울 거라 했다. 너무 긁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술과 담배는 금물이라고 했다. 의사는 잠은 충분히 자느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붉은 곳으로 가려했다. 간호사가 손을 잡더니 아래로 내려놓았다.

-긁으면 주변으로 번져요. 일주일 정도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잘 챙겨 드시고요. 연고도 같이 챙겨드릴게요. 연고는 강한 거니까. 밤에만 바르면 됩니다.

약국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가려움이 계속돼 누굴 만나기도 싫었다. 왠지 만나면 그곳을 긁고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하루분이 남았다. 병원을 갈까 하다가 괜찮겠지 생각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벅지 위에도 같은 반점이 생겼다. 가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배꼽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도 반점이 생겼다. 아주 작은 반점이었다. 긁어야 할 곳이 점점 많아졌다. 긁어대는 동안 벅벅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손톱 밑엔 또 피가 묻어났다.

휴대폰 화면엔 또 똑같은 문자가 와 있었다. 


-어휴, 저놈이 무슨 자식이라고… 생활에 보탬이 안 돼.

문을 넘어 거실의 소리가 울려 들어왔다. 연고를 꺼내 붉은 곳에 얇게 펴 발랐다. 차분해졌다.

-돈만 들어가, 돈만. 집안 꼴이 어떤 때인데 나가서 일할 생각도 안 하고.

차분해진 곳이 다시 가려워졌다. 손톱을 가져가려다 다시 약을 발랐다. 이번엔 참을 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나가 돈이라도 벌어오면 얼마나 좋아. 몸뚱어리도 시원찮으니 저러고 있지 어휴…

긴 한숨 소리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미 손톱으로 가려운 곳을 긁고 있었다. 점점 긁는 세기가 강해졌다. 벅벅 소리가 났다. 거실에서 들리는 티브이 소리가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긁지 말라고!!

-왜!! 내가 긁고 싶어서 긁어, 가려운 걸 어떻게 하라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순간 피가 한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벅지로도 한 방울 흘러내렸다. 가려웠다.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러냐고!! 내가 무슨 잘못인데. 내가 잘못한 게 뭔데. 뭐냐고.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가려움이 올라왔다.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러냐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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