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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Dec 02. 2019

순댓국의 전설...

손바닥 소설

배 대리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오전 중에 끝낼 수 있는 일이라며 큰 소리로 호기 부릴 때 알았어야 하는 건데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어깨너머로 모니터를 훔쳐보니 아직 정리되지 않은 주문서 시트가 뒤죽박죽이었다.

“언제 끝나? 밥 먹으러 가야지.”

“어? 엉. 가야지 잠시만 있어 봐 곧 끝나.”

시계를 보니 이미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근데 뭐 먹을 건데?”

배 대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땐 10분이 더 흘러있었다.

“응? 끝났는감?”

“뭐 대강. 근데 뭐 먹을 건데?”

“순댓국.”


회사 정문을 나서 자주 가던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국밥집에 순댓국이 끼어있는 메뉴라면 여기는 순댓국이 주인이다. 그리고 다른 메뉴도 두세 개뿐이다. 거기다 점심시간에는 돼지국밥, 순댓국만, 그 외 메뉴는 손님이 한산한 그 외 시간만 주문할 수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인데도 자리가 없어 4인석 자리에 합석했다.

“이모, 여기 순댓국 2개요!”

주문을 받은 주방 앞 이모가 주문을 반복했다.

“순댓국 둘!”

주방에서 복작거리는 소리가 가게 전체로 울렸다. 점심시간 절반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마치 유명세를 증명하듯 계속 북적거렸다.

“일은 다 했어? 2시까지 보고잖아.”

“뭐, 대강. 느는 건 요령 뿐이라.”

쟁반을 식탁 끄트머리에 놓더니 순댓국 2개를 올려준다. 그리고 서둘러 다른 테이블로 옮겨갔다. 적당히 새우젓을 덜어내 담금질하더니 이내 한 숟갈 떠서 맛을 본다.

“오늘은 맛이 이상하네...”

배 대리가 한입 먹더니 그런다.

“그럴 리가... 난 괜찮은데.”

배 대리는 뭔가 기억날 듯, 말 듯 한 아리송한 표정으로 순댓국을 바라보더니 그냥 먹기 시작했다. 뿌연 국물이 이리저리 숟가락에 밀려다녔다.


점심시간이 끝이 나고 3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보고를 마친 배 대리가 옆자리로 오더니, 고갤 푹 숙인다.

“뭔데?”

“망했다!”

나는 의아했다. 배 대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주친 표정은 거의 울상이었다.

“순댓국 때문이야...”

배 대리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등을 바라봤다. 바지춤에서 빠져나온 흰 셔츠는 땀에 젖어있었다. 

‘설마…’


그제야 그 집 순댓국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순댓국을 먹기 전 하던 일이 깔끔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는 이야기. 회사 내에서도 꽤 알려져 있었다. 선배의 선배, 그리고 그 선배의 웃 선배에게서부터 내려오던 이야기. 그날 오후에 발표회나 좀 큰 보고회가 있을 때나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 등 그런 일이 있을 때 이 집 순댓국을 먹으면 완성도를 판단할 수 있다는 소문 그리고 ‘그 집 순댓국을 한입 먹고 맛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하는 일을 돌아보라.’란 명언이 회사에 알음알음 퍼져 있다는 걸.


다시 돌아온 배 대리가 말해준 사건의 전말은 오전에 마무리하고 있던 시트 정리는 오후에 있을 보고를 위한 것이었는데 발표를 하는 중에 속에 탈이 났다는 거였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순댓국.

“내 속이 부대낄 때 알았어야 했어. 아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알았어야 했어. 왜 생각이 안 난거지.”

“그거?”

“그래. 그거. 아~ 씨! 난 완벽했다고!!”

나는 배 대리의 표정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아주 긴장한 탓에 보고 순간 탈이 난 것은 확실한데 설마 그것 때문일까 생각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런 거라고 웃으며 배 대리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더욱 순댓국 전설을 강조했다.

“아니야, 분명히 순댓국집 전설 때문이라고!”

나는 한 번 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김 과장 앞에서 고갤 떨구고 있는 배 대리를 봤다. 혼나는 분위기 같이 보였는데 그건 아니었는지 돌아오는 표정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보고에 대한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며 무난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점심 뭐 먹을까? 순댓국 어때?”

“오늘은 보고 없어?”

“보고?”

배 대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없지. 그리고 그 맛있는 순댓국을 그깟 일로 외면하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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