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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o life Nov 29. 2019

향기, 커피 그리고...

손바닥 소설

향기, 카페 그리고...


“안녕하세요?”

낯선 인사에 여자는 머뭇거렸다. 천천히 올려다보았을 때 남자의 어색한 미소가 얼굴에 어려있었다. 그리고 날씨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발그레한 기운이 얼굴에 퍼져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긴장이 느슨해졌다.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앉을 수 있을까요?” 남자는 여자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그와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인기가 많은 카페도 아닌데 그날은 콘센트가 있는 빈자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는 자신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짐을 이리저리 풀어놓더니 의자를 당겨 앉았다. A4용지 다발과 노트북. 콘센트에 연결된 전원 케이블 끝에 빨간불이 잠깐 깜빡이더니 점등되었다.

그의 주변에서 진동이 느껴지더니 이내 우우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주변으로 흘렀다. 그는 그녀를 방해한 건가 싶어 미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 머그잔과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미안해서 그러는데 샌드위치 좀 드실래요?”

그녀는 사양했다. 처음 본 사람의 호의는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머쓱한 그는 노트북 화면 속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그 이후 종종 그와 그녀는 카페에서 마주쳤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는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그녀는 어색해하면서도 그의 인사에 답했다. 어떤 날은 멀리서 각자의 일을, 어떤 날은 처음 만난 날처럼 마주 앉아서. 그는 그녀와 마주 앉게 되면 으레 그는 샌드위치를 권했다. 몇 번의 만남이 더 이어진 뒤 그녀도 쿠키를 권했다.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고 어느샌가 그와 그녀는 나란히 앉아 각자의 일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카페의 커피 향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서로가 다른 곳에 있더라도 은은하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즈음 둘 사이의 빈 공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꽤 멀리 떠나온 여행지에서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혹시 첫 만남 기억해?” “응?”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처음 만난 날 말이야. 그곳에서.” 그녀는 잘 못 들었을까 불안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아~ 그럼 기억하지.” 그는 기억을 더듬는 척하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구석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네 앞자리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 사실 그 자리보다는 네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그는 그 말이 쑥스러운 건지 부끄러운 건지 그때와 같이 볼을 붉혔다. 그녀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래서 용기 내서 물어본 거고 늘 생각해 보지만 어디서 그런 마음이 불어왔는지 잘 모르겠더라. 단지 네 모습,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네 모습에 자꾸 끌려서...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 맞을지도…” 그녀는 그를 보며 웃음 지었다. “왜 웃어?” “그냥….” 그도 그녀에게 물었다. “그때 왜 자리를 내어준 거야?”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웃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입을 삐죽거렸다. “왜?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아서?”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내심 무엇을 기대했었던 건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그런 그의 반응에 그녀는 다시 웃었다. “상기된 너의 볼이 기억에 남아 있어. 처음 말 걸 때 그 발그레한 뺨이 기억에 남아 있어. 그게 싫지는 않았던 거 같아.” 그녀의 말에 그는 웃었다. “사랑해….” 그리고 따스한 입술이 부드럽게 포개졌다.



시간이 흘러 서로가 익숙함이 서로의 향기가 되어갔다. 그리고 서로에게 배어 있던 카페의 커피 향기가 점점 흐려져 갈 때쯤 서로의 마음에 담고 있던 첫 기억에 왜곡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대답이 변해갔었고 그녀의 감정은 가라앉았다.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더 자주 흘러나왔지만, 점점 흐려지는 듯했다. 마치 너무 젖어 물감이 번져 흐려진 그림처럼. 그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메말라 갔고. 그녀는 그에게 자꾸 만났을 때의 감정을 물었다. 그럴수록 각자의 시간이 늘어날 뿐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오랜만에 거기서 볼까. 할 말도 있고.’ 그녀의 문자. ‘알았어.’ 그는 짧게 답했다. 카페는 여전히 커피 향이 가득했다. 처음 그녀와 그가 만났던 카페의 커피 향기는 여전히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만났던 자리를 피해 창가에 앉았다. 곧 그도 도착했다. 

따스한 음악이 카페의 체온을 올렸다. 그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그리곤 카페를 둘러보았다. “오랜만이네… 이 카페. 한동안 못 왔었는데, 변한 건 없는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고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니야 조금 변한 거 같기도….” 그녀는 말을 숨겼다. 그도 그녀도 서로의 향이 더는 서로를 끌어당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로의 공간이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런가…, 바쁘다더니 어떻게 지냈어? 잘….” 그의 말을 그녀가 끊었다. “뭔가 정리해야 할 것 같아.” 그는 입가에 가져가던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래야겠지. 미안.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야, 나도 미리 말을 했었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이어진 잠시의 침묵. 커피잔 손잡이 언저리의 깨진 부분이 손에 자꾸 걸렸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자.” 그녀는 말없이 손잡이의 깨진 부분을 매만졌다. 아무 말 없이 그와 그녀는 앉아있었다. 손을 멈추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 우리 헤어지자.”


낮 동안의 섞여 있던 도시의 불빛은 밤이 되자 뿔뿔이 흩어져 길을 밝혔다. 어두워진 거리는 한낮의 적막보다는 소란스러움이 더 어울렸다. 남자의 향기도, 여자의 향기도 아직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두 잔의 커피가 식어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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