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힘들지만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아 [마무드에세이, 3]
장녀들은 빨리 엄마를 실망시킬수록 나중 인생이 편해집니다.
-트위터 글 중
가끔 SNS를 보다 보면 이와 같은 트위터 글이 사진, 즉 짤로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정말 짧은 한마디지만 대부분의 장녀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태 받아왔던 부모님의 기대와 책임감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아직까지도 본인에게 주어지는 어쩌면 강박일 수 있는 나의 책임감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나는 장녀로 태어났다.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는 장녀. 내 동생은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같이 장난기가 많았고, 청소년이 되고 나서 크고 작은 몇 번의 사고로 부모님 속을 썩이는, 그렇지만 심성은 못되지 않고 오히려 착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도가 지나치지 않은 능글맞음과 남동생이지만 막내다운 나름의 애교가 있었고 미운 짓을 해도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그런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보는 내 동생은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머리가 좋은 편이라 뭐든 빨리 배우고 잘 배우는 사람 중 하나다. 정의감은 왜 그렇게 투철한 지 남들은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데 나는 그 더러운 똥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가 치우냐며 치우려 드는 쪽이다. 또 책임감은 그보다 더 해서 내가 맡은 일은 끝까지, 죽이든 밥이든 완성을 해야 한다. 이왕이면 밥으로. 그렇기에 무언가 결정하고 진행하는 부분에서 정확하고 냉정한 편이다. 나 스스로 객관적이려는 노력도 많이 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약해지고 관대 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다.
그런데 나의 이런 성격적인 부분이 대부분의 장녀들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주변 장녀들과, 장녀의 특징을 다룬 책과 글을 통해서 말이다. 제일 일치하는 부분은 책임감과 독립심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엄마와 같은 성별을 갖고 있기에 엄마가 딸에게 갖는 동질감과 ‘너만은 나를 이해해 주겠지’라는 기대감, 그리고 첫째 아이기에 이 세상에 부모가 처음인 부모들의 기대감과 조금은 서투른 사랑이 장녀를 그렇게 만들지 않나 생각해본다. 내가 장녀로 태어난 이유로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대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마음은 가끔 부모님을, 또 이렇게 행동하는 나를 원망하게도 만들었던 것 같다.
그중 항상 비슷한 경우로 가장 속이 상하는 부분이 있었다. 엄마 생신이었다. 나는 매년 엄마에게 생일선물을 해주기 위해 엄마가 뭘 갖고 싶어 하시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곤 했다. 보통 생신 2주 전부터. 그런데 동생이 생전 처음으로 생신 전날 엄마께 생일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신지 물어봤었다. 그 후 아빠께 동생이 엄마 생각을 참 잘하는 것 같다며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당연히 그 옆에는 내가 있었다. 괜스레 울컥, 마음이 억울하다며 소리쳤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매년, 그것도 2주 전에 물어봤는데 동생이 올해 처음으로 전날 물어본 게 엄마 생각을 잘하는 거냐며, 그럼 나는 뭐냐며. 엄마는 우리 딸은 당연히 엄마 생각을 잘하니 말을 할 필요도 없었던 거라며 넘어가셨다. 나도 더 이상의 논쟁이나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그렇게 어물쩡, 삐뚤어진 액자처럼 넘어간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매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몹쓸 사람이 되는 거에 비해 매번, 매 때마다 못하다가 한번 잘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 그렇지만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 후에도,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관계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과 같이 나에게 모든 감정적, 사회적 기대감이 쏟아지고 동생은 그저 아픈 손가락처럼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 인생을 그 시선 하나로 평생을 원망하거나 억울해하며 살기에는 내 인생은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운 마음은 나를 괴롭히기만 하기 때문에. 그래서 미운 마음 대신 내가 가진 것들을 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꾸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려놓을 것은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너무 큰 책임감과 의무감, 독립심은 화를 부른 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으니. 뭐든 적당히가 중요하듯 그도 그렇다. 적당히 하지 못해서 나는 타인이 웃으면 내가 웃지 못했고, 내가 웃으면 타인이 웃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책임감과 독립심, 그리고 정의감을 조금씩 나에게서 덜어내는 연습을 했다. 처음부터 하나씩 천천히.
내려놓으려고 하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내가 미움받거나 나쁜 감정을 받아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미움도 좀 받아보고 재수 없는 나쁜 년도 돼봐야지. 그래야 한 번 사는 인생, 나중에 후회 없지.’라고.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을 내려놓았다. 그다음으로는 정의감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사실 미움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보다 세일러문처럼 살던 인생을 바꾸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나는 여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표현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기를 자처했기에. 그러나 정의감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아닌 것에도 침묵할 줄 알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가장 먼저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몰래 가야 했으니까.
나는 여전히 조금 더 내려놓고 나와 타인이 함께 미소 지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화가 나는 끓는점을 높이고, 더 잔잔히, 고요하게.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없이 살기 위해. 그리고 장녀로 태어나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보다는 장녀로 태어나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