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짜는 게 좋아 양치를 하는 편 [글마루, 4]
치약을 선물 받는 걸 좋아합니다. 치약을 선물해주는 것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치약을 함께 쓰고 싶습니다.
어쩌면 치약은 사람과 비슷한 면이 꽤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약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치약에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에 속합니다. 치약이 마치 사람을 많이 닮은 것처럼 느낍니다. 많이 닳지 않았지만 나의 치열에 어느 정도 길이 들여진 칫솔에 치약을 쭉 짜고 칫솔을 입에 물고는 중간을 잡아 쭉 짠 치약을 그 모양 그대로 뚜껑을 닫아 놓습니다. 중간이 찌그러졌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새로 산 빳빳하고 구김 하나 없는 치약의 모습보다 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는 제 손에 익어가는 그 모습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맞게 길들여지고 또 때가 되면 아래서부터 접어가며 쓰기 좋게 만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느끼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치약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양치를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불면에 오래 시달릴 때면 더 이상 자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벌떡 일어나 양치를 하고는 합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생각 지도가 그려지는 때에도 욕실로 들어가 양치를 합니다. 양치를 천천히, 꼼꼼히 하다 보면 입안이 상쾌해지는 만큼이나 머릿속이 시원하게 비워지는 듯합니다. 복잡하고 엉켜있던 머릿속 실타래가 치약을 짜고,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구면서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그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그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치약이 소모품이기에 더 애정이 갑니다. 소모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영원할 것 같지만 빛나는 깡통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일까요. 소모품은 그 물건을 애정을 담아 사용한 시간이 우리에게 남기에, 그것이 소모되지 않는 쪽보다 더 애정이 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애정을 담아 사용한 물건이 있다는 것, 그 시간에 함께였다는 것. 그것만큼 따뜻하게 날 감싸 안아주는 일이 또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쓸 치약을 고르고 또 골라 선물할 날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