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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Apr 09. 2020

감이, 떨어졌네

내 마음에 솔직하지 않을 때 [마무드에세이, 10]


 몇 주 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사실은 두려운 마음에 계속해서 피하고 숨어버렸던 거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요즘 나는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제일 먼저 글을 쓰는 게 더 어려워졌다. 나름대로 시도는 해보았지만 글 쓰는 게 이렇게까지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나, 그리고 내 마음에 꼭 들진 않아도 이 정도면 내 마음을 잘 투영해낸 편이라며 위로하며 발행할 수 있는 그 정도 수준까지 글을 써내리는 것이 이렇게까지나 힘든 일이었나 생각했다. 하기야, 내 마음에 내가 솔직하지 못하고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었으니 내 마음을 활자로 반듯하게 써 내려가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 글은 나 스스로 읽어보았을 때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애써 숨기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 하나로도 벅찬데 내가 하고 싶은 일조차 마음대로 하질 못했다. 그게 너무 화가 났고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국'에도 불구하고 에라 모르겠다 라며 제주도 비행 편을 예매해 떠났다.


 제주도는 이미 벚꽃이 펴있었다. 첫날에는 만개까진 아니었지만 오는 날에는 만개한 벚꽃을 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제주는 참 한결같았다. 푸르고 하늘이 날마다 다른 색을 뗬지만 그 어떤 색이든 그 자체로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하다못해 비가 펑펑 내리던 날도 말이다. 마치 나 대신 울어주는 것도 같았고 전에는 짜증 났던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마저 나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다시 구름이 껴 있지만 구름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결국에는 비도 개는 날이 온다며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듯 말이다. 나는 잘 먹고 잘 잤다. 뚜벅이로는 제주여행이 힘든 걸 알기에 차가 있어 반주는 못했지만 저녁은 숙소로 싸가지고 와 반주를 하며 술의 쓴맛도, 단맛도, 그리고 결국에는 물처럼 느껴지는 때까지도 마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알아가는 듯했다.


 나의 자만이었다. 이 어지러운 마음과 정신은 ‘여행’이라는 도피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직면해야 했다. 나의 문제와 나의 복잡한 생각들에게. 그걸 알기까지 나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꽤나 걸렸고 이제야 직면하는 중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지 3주가 지나서야 말이다. 그동안 한 것이라고는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뿐이었다. 그때는 뭐라도 하나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조금 차린 듯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 마음에 직면하면서 글도 다시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써내리려는 순간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모든 감이 떨어졌다. 감이,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글을 썼더라? 뭘 써야 하지? 뭐라고 써야 하지? 글을 어떻게 쓰는 거였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며 머리를 쥐어 잡고 몇십 분을 나의 자아와 사투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되는대로 글을 쓴다. 내가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뭐라고 써왔는지 그 어느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쓴다. 아마 전의 나도 이렇게 써 내려가지 않았나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에 차가운 칼날처럼 지나가는 듯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써왔는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알았으니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떻게 쓸 것인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어쩐지 조금은 자기 위로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하.


 내 인생은 언제나 게으름과 부지런함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였고, 그와 함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도 게을렀다가 또 언제는 부지런했다. 지금은 충분히 게을렀던 기억을 갖고 있으니 이제는 부지런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가장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을 알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선택을 할 것을 안다. 사실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내가 다시 한번 부지런해져 지혜로운 생각과 선택을 하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수많은 ‘나’에게 전하고 싶다. 감이 떨어졌다면, 그 감을 주워 깨끗이 씻고 맛있게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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