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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도 막 하는 게 아니야

작전이 중요해

by 리뷰몽땅

"그냥 내가 이기는 싸움이 될거라고 생각했어. 당연한 거잖아. 장판 3CM 찢어졌는데 수리비로 200만원을 받아가는 건 정말 벼룩이 간을 빼먹는거고 또 그 때 그 아저씨 말대로 범퍼 살짝 긁힌 걸로 범퍼를 완전히 바꿔다는 거랑 뭐가 다르냔 말이야."


민정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똥을 먹는 꿈을 꾸었지만 분명히 대박나는 꿈일거라고 생각했다. 더럽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디 똥꿈을 쉽게 꿀 수 있는 꿈이냔 말이다. 벌써 몇 달째 잠도 제대로 못잤다. 무엇보다 누구한테 이야기하더라도 어이없는 집주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설마 설마 하면서도 분명히 민정은 집주인이 질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200만원을 다 돌려받느냐 아니면 그보다 더 적은 금액을 돌려받느냐 그게 문제였다.


법원으로 가는 날 아침이었다. 무슨 제사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민정은 아침 일찍 일어나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욕조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애를 썼다. 새롭게 위사한 집은 위풍이 심하다. 화장실에 뜨거운 김이 서려서 보기에는 따끈해 보이지만 차갑다. 가급적이면 뜨거운 물 안으로 온 몸을 집어넣어야 한다.


민정은 작은 난로를 사서 잠을 잘 때는 침대 근처에 일을 할 때는 책상 근처에 그리고 목욕을 할 때는 욕실 안에 난로를 들고 다닌다. 13,000원 주고 산 난로가 아니었다면 올 겨울은 정말 추울뻔 했다. 문틈으로 스며 들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춥다고 보일러 온도를 올리는 건 옳지 않다. 집에서도 내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담요로 무릎을 덮고 푹신한 털신을 신는다면 한달에 몇 만원은 아낄 수 있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버텨야 한다.


그래서 200만원은 민정에게는 큰 돈이었다. 어떻게든 받아내야 하는 돈이었다. 1년도 안되어 빚이 두 배로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온 몸에 뜨거운 온기가 전해지려로 할 때 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한참 낯선 번호를 노려보다가 민정은 아주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무슨 말이야. 법원에도 다녀오고 경찰서에도 다녀오고 오늘 한꺼번에? 그러니까 그 자식들이 너를 문자 폭탄으로 정말 신고를 했단 말이야? 그게 정말 죄가 되는거라고?"


"일단 경찰서에 다녀왔어. 경찰은 신고가 들어왔으니 일단 조사를 한거래. 그리고 나는 집주인에게 협박한 적은 없다. 그냥 만나서 손상 범위를 확인하자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


경찰의 말은 이랬다. 그 쪽에 변호사가 끼었고 그게 문제라고 말했다. 민정이 200만원을 받겠다고 민사를 진행했고 지금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변호사는 정보통신망법 어쩌고를 들먹거리면서 이 싸움을 개판으로 만들 예정인 것 같다. 너는 변호사와 상담을 해 봤느냐. 너에게는 변호사가 있느냐.


"판사는 뭐래?"

"오늘 바로 결론이 나는게 아니었어."


이럴 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것은 큰 도움이 되는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숨듯이 혼자 처박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도 대충 눈치를 챈 것 같다. 둘은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정당하다고 생각했었던 일은 오히려 엉뚱한 골칫거리를 만들었다. 형사라는 사람도 처음부터 그 쪽에서 원하는 돈 50만원을 주고 말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말했다. 법대로 하면 민정은 자신이 무조건 이길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대로 하면 민정이 더 골치 아픈 일에 빠져들게 생겼다. 문자폭탄이 정보통신망법에 의해서 죄가 되든 되지 않든 그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로 민정을 힘들게 만들 것이 뻔했다.


법에 따르면 민정이 하려는 행동은 정당함이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에 문자 폭탄이라는 범죄가 들어가면서 집주인과 변호사는 민정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너는 범법자다. 200만원을 받고 범법자가 될테냐. 200만원을 포기하고 너의 죄를 용서받을테냐.


창 틈으로 또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서 온도가 막 떨어지나보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민정은 행여나 문틈이 벌어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을 했다. 하나씩. 그리고 침대로 들어가 전기장판을 켰다. 잠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괜히 눈물이 났다.


돈을 모아야겠다. 돈을 더 벌어서 그리고 모아서 나도 변호사를 사야겠다. 그리고 다시 싸워야겠다. 그냥 이대로 지기에는 너무 화가 났다. 이번 싸움은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는 내가 졌지만 변호사를 쓸만한 돈만 모으면 내가 이길 수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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