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로하는 방법

겨우 이런 말로 위로가 됩니다.

by 리뷰몽땅

그래서 포기를 하겠다는 민정의 말에 민수는 그럴 거면 진작 포기했어야지라고 말을 뱉었다. 아, 이게 아닌데. 남자들이란 원래 욱하는 성질이 있다지만 이게 핑계가 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동안 힘들었지. 잘 생각했어. 나중에 우리 힘내서 다시 생각해 보자.라는 말도 있었을 텐데. 왜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을 내뱉었을까.


"민수야. 포기가 아니야. 그냥 나는 나중에 내가 변호사 살 수 있을 때 그럴 때 하겠다는 거야. 지금은 내가 힘이 없잖아. 잘못하다간 내가 오히려 똥을 덮어쓰게 생겼다니까. 형사 아저씨도 그랬어. 큰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고.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그랬잖아 너도. 그래서 나는 지금 더러운 똥 피해 가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럴 거면 진작에 그랬어야지. 그동안 맘고생은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못하겠다니까. 하는 말이잖아. 속상해서 나도."


"그래. 너도 그동안 힘들었겠지. 그런데 민수야. 나는 지금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민수야 나는. 잘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 나도 내가 잘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아.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라는 걸 알아. 그런데 나는 네가 나한테 잘했다는 말을 해줬으면 했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말 쪽 팔려서 내가 이제 와서 포기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어. 그렇게 큰 소리 뻥뻥 치더니. 정의가 어떠니. 법이 어떠니 떠들더니 이렇게 바로 꼬리 내리는 거 쪽팔려서. 정말 나 지금 너무 쪽팔린다고!"


민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민수는 그때서야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많고 많지만 이유 없이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민수가 더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바로 며칠 전 할머니와의 일로 민수가 속이 상해서 민정에게 하소연을 했을 때 민정 역시 그러지 않았던가. 재판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서운했었던지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야. 그런 걸 그렇게 잘 아는데 너는 안 그랬어? 너도 내가 할머니 일 이야기했을 때 하나하나 따져가며 말하지 않았어? 나도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말하고 싶었던 거야. "


이런 찌질함. 민수는 말하고서도 자신이 너무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말은 뱉었고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는 거야? 복수라도 하는 거야? 아, 그때 그렇게 속상하셨어? 그래서 너도 나만큼 속상해봐라 이거야? 그런데 그거랑 이게 같아? 어떻게 이걸 그때 일이랑 비교해? 너는 할머니 일이고 내가 네 할머니 입장에서 말해준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서운했어? 나는! 그럼 나는! 나는 할머니도 아니고 집주인이고 변호산데. 그것들이 내 돈을 내 피 같은 돈을 날로 먹어버린 건데. 그러고도 나는 죄인이라는데.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따지지도 말라는 건데. 거기다가 복수를 하고 싶었어? 야 이 나쁜 새끼야!"


일방적으로 깨졌다. 그래도 뚫린 입이라고 민수는 끝까지 왜 나한테 성질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이게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라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행동은 정반대로 나오는 건 약도 없다.


생각할수록 미안했다. 곱씹어 볼수록 미안했다. 거기에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때 민정의 행동이 얼마나 서운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말을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위로하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지.' '많이 힘들었겠구나.' '괜찮아. 내가 있잖아.' 겨우 이런 말이라고? '그래, 조금 쉬어가자.' 이런 말이라고? 겨우 이런 말로 위로가 된다고?


제기랄.


(다음편에 계속)



keyword
이전 04화싸움도 막 하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