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퇴근을 하고 민수는 잠깐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싸맸다.
"아이구 민수야. 네 애비가 온단다. 얼마나 좋으냐."
"할머니. 무슨 말이야?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은 무슨 말이야. 애비가 온다는데. 이제 아예 캐나다에서 올건가보더라."
일주일 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버지가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
민수가 마중을 나가기로 했지만 쉽게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만나면 뭐라고 해야할지도 막막했다.
아버지라고 불러본 지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릴 때는 가끔 전화 통화라도 했지만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부터는 그런 일조차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그렇게 살았다. 아니 희소식을 바랄 사이도 아닌지 벌써 오래됐다.
공항 가는 길은 한산했다. 늦은 밤이었고 길은 뻥뻥 뚫렸다.
아버지가 도착하는 시간은 밤 11시였다.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민수는 다시 운전석에 머리를 박았다.
하루도 잠잠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구나.
어색해 하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는 할지 궁금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때맞춰 한국에 일이 있었던 아버지가 왔었지만
민수의 졸업식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민수에게 몇 만원을 건네며 졸업을 축하한다고 했다.
"이제 너도 어른이다. 고등학생이면 어른이지. "
그 후로 아버지는 한 번 더 한국에 왔었지만 민수를 만나지는 못했다.
부모 자식간의 정이란 건 그들에게 없었다. 적어도 민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민수는 단박에 알아봤다.
15년만인데도 아버지는 조금 더 늙어보였고 조금 더 몸집이 불어나 있을뿐 그대로였다.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아버지는 민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는 않았다. 앞을 보며 차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민수는 캐리어를 받아 끌며 차는 주차장에 있다고 했다.
민수가 앞서서 걸었고 아버지가 뒤따라 걸었다.
보통 노인네들은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아홉시가 되면 잠이 들었고
새벽 4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그런 분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아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춤이라도 출 것처럼 어깨가 덩실덩실 대고 있었다.
민수는 괜히 벨이 꼬였다. 뭐가 저렇게 반가울까.
아버지의 가방에서는 선물이 쏟아져 나왔고 할머니는 하나하나 챙겨들며 신이 났다
갑자기 민수는 졸음이 쏟아졌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도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나 너무 피곤해서 좀 잘게요. 아버지 내일 뵈요."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