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엄마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늘 싸웠죠.
큰언니의 일기장에는 집이 조용한 날이 딱 하루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늦게까지 큰언니는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에 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큰언니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요. 길거리에서 언니를 만나면
나는 친구 뒤에 얼른 숨거나 모른척 고개를 숙이고 걸었습니다.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집이었지만 큰언니는 마치
엄마와 아버지를 대신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들을 책상 앞에 불러 모아 공부를 시켰어요
그런 큰언니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던 날
나는 한편으로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오래 가지 않았어요. 둘째 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책상 앞에
붙들어 놓았고 무섭기로 치자면 큰언니를 앞섰습니다.
저녁이면 엄마는 머리를 싸매고 눕는 날이 많았어요
그럴때면 언니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밥을 해서
밥상을 차리고 우리는 둘러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시퍼렇게
날이 선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와 난동을 피우기도 했어요
밖에서 보기에 아버지는 엘리트였지만 엄마한테만큼은 달랐죠
엄마의 소원은 남편에게서
월급봉투를 받아 살림을 하는 것이었다
월급날이면 아래층과 위층 사람들이
시장에서 고기를 사와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구워 먹는 모습이
엄마는 부러웠다고 했다
월급날이면 되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엄마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왔다
남보란 듯이 고기를 구웠다
어린 동생들은 앞뒤 사정도 모른채
맛나게 고기를 먹는 동안
큰언니와 둘째언니는 서로 눈치를 봤다
엄마의 소원은 남편이 주는
월급봉투에서 몇 만원을 꺼내어
식구들을 위한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쿵짝이 맞는 날이 가끔 있기는 했습니다.
둘은 노래를 무척 좋아해서 인기가요를 틀어놓고
보기 좋게 춤을 추는 날이 있었어요
그런 날이면 우리는 춤을 추는 엄마 아버지를 보며
마음놓고 박수도 치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살포시 잠이 들었던 나는 엄마의 노래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언제 일어나 앉았는지
말끔하게 머리까지 빗고 엄마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며
다정했던 사람
간신히 눈을 뜨고 엄마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평생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남편을 그리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는 엄마의 인생이 너무나 슬퍼서 숨죽여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