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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뒹구리 Jan 29. 2021

04. 과거의 내가 쓴 돈 vs 미래의 내가 쓸 돈

카드값, 시발비용

집뒹구리 이야기


04. 과거의 내가 쓴 돈 vs 미래의 내가 쓸 돈

카드값, 시발비용




모아도 모이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났다. 안 먹고 안 쓰고 버티고 버텼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돈이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간신히 참았던 모든 것들이 폭발했다. 봉인했던 카드를 꺼내어 그동안 참아왔던 것에 돈을 써버렸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옷을 사고, 생활에 그다지 필요 없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을 샀다.


이런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시발비용”이다. 이 “시발비용”은 내 안의 소비성을 부추긴다. ‘내가 안 먹고 안 쓰고 모았는데, 남는 것도 없다니! 이렇게 찌질하게 살 바에는 그냥 다 써버려!’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로 인해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갖고 싶었던 것을 결제했다. 그리고 다음 달 카드 값을 갚으며 돈이 없어지고 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돈을 모으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아둔 돈이 사라졌을 때의 그 허무함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 지 몰랐다. 목적없이 그저 아끼고 참다 보니,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을 때 버텨 낼 힘이 없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을 것을 하려고 해도 이미 체력이 다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무엇인가로 풀어야 하는데,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아주 편리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소비이다. 요즘은 아주 쉽게,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가 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돈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를 하다 보니 카드 값이 늘어났다. 이번 달에 카드 값을 쓰지 않았는데도 내야 할 카드 값이 항상 있었다. ‘도대체 누가 카드를 이렇게 긁었냐’며 내역을 살펴보면 다 내가 산 것들이 맞다. 아주 예전에 샀던 할부들이 아직도 남아서 지난 달에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카드 값은 항상 나왔다. 그 당시에 생각없이 결제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힘들게 했다.


카드 값을 내기 위해 일을 했다. 그리고 월급을 받아서 카드 값을 내고 나면 정작 쓸 생활비가 없었다.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데, 항상 카드 값으로 다 나가버리니 내가 쓸 것이 없었다. 열심히 벌어도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없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또 돈을 쓰게 되었다.



내 정신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남편이었다. 나는 ‘생활비를 아껴 봤자 카드 값으로 나가고 세금으로 나간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남편이 이야기했다.


“카드 값은 우리가 먹고 사용한 돈이고, 세금은 우리가 이 집에서 살고 차를 굴리면서 생긴 돈이야. 우리가 돈을 모으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거야. 그나마 돈을 모아 놨으니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던 거지.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해 놔야 해.”


그렇다. 결국 과거의 내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한 카드 값이 나에게 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카드 값을 내기 위해 월급을 받아야 하는 생활을 끊어내려면, 돈을 쓰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 목적없이 돈을 아끼면, 또다시 “시발비용”이 나타난다. 나는 이 놈에게 무척 약해서, 그냥 참고 참다가 또 폭발해버리게 될 것이다. 이 “시발비용”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확실한 목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봐야 했다.


‘지금 내가 내는 카드 값은 과거의 내가 쓴 카드 값이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카드 값은 과거의 내가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과거의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고통받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지금의 내가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내가 조금 힘들면 미래의 내가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돈을 쓰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쓸 돈이 더 많아진다’는 개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개념이 한 번에 와 닿은 것은 아니다. 내가 돈에 대한 공부를 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되면서 점차 알게 된 것이다.



엄마랑 아기랑



나는 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눈 앞의 생활을 감당하기도 벅차서 미래를 그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 미래를 생각하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에 가는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의 미래를 그리면서 내 미래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때마다 해줘야 할 것들이 필요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난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한다.



지금의 나는 조금 찌질하게 살아도 괜찮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되었을 때까지 찌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나이가 들고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무엇인가에 도전해보고 실패했을 때, 괜찮다며 다독여줄 수 있는 여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손주들이 태어나면 용돈도 주면서 넉넉한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미래를 그리며 내가 그리는 노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려면 경제적인 여력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면, 미래의 나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부족하게 살아도 미래의 내가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은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를 그리다 보니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나는 노후에 돈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목적없이, 단순하게 돈을 모으기 위해서 안 쓰고 아끼면, 언젠가 꾹꾹 눌러왔던 소비력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쓰지 않은 돈을 미래의 나에게 돈을 송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돈을 모으면서도



“시발비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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