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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Dec 12. 2020

독립적인 여성은  어떻게 아이 셋을 낳게 되는가?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일을 내 일상에서 걷어치우기로 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를 설명할 때 테레자의 어머니를 자꾸만 소환한다. 유년시절의 환경,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른이 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수십 권의 육아서에서  '상처'가지고 '어머니'를 자꾸만 소환해서 징징대는 양육 가설이 지겨워질 법도 한데 아직도 쉬이 지나치지를 못하겠다. 내가 어머니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세 녀석에게 내가 또 어떤 '영향'을 끼쳐서 '상처'를 만들 것인가 싶어 하루하루 조선왕조실록 편찬하듯 육아일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어머니란 존재가 내 유년시절에 끼어든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은 테레자의 '징징거림'을 조금 부러워하다가, 공감하다가 의심을 하게 된다. 혹시 너무 방치되어 자란 내게도 그로 인해 상처가 있을 것이야, 어쩌면 내가 애를 셋이나 낳은 것은 그런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해봤지만 히 수긍되진 않는다.


  섬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어머니의 부재'가 온 마을 아이들에겐 당연했다. 그런데 책에서 토마시와 테레자 관계를 표현할 때 테레자가 썼던 '필요'란 말에 내가 반응을 하더란다. 나는 왜 '필요'한 인간이고 싶었을까? 어머니한테 별로 관심받지 못하고 커서? 복닥거리는 여섯 형제들 사이에서 나를 증명하느라고? 필요한 인간이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세뇌시킨 제도 교육 때문에? 모두 다 맞다. 결코 주양육자에게서만, 양육환경에서만 이유를 찾기에 나란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나라는 인간은 어머니보다 형제들과, 형제들보다 제도 교육 속 또래 친구들에게 또는 미디어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랐으므로!


열아홉 살 때 집에서 독립해 진로도 혼자서 결정하고, 대학이나 취업준비도 혼자서, 자취하며 서른 살이 되기까지 많은 것 들을 혼자서 해냈다고 생각할 만큼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로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살았다.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해서 일을 관둬야 했을 때 내 욕심은 아기에게 옮겨갔다. 어쩌면 그때 계획했을 수도 있겠다.

  일과 육아에서 육아를 선택한 것 때문에 일터로 돌아가는 게 힘들다면 나는 육아에서 내 쓸모를 찾을 것.

그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뒤늦게 알게 된 페미니즘은 그런 내 욕심과 쓸모를 증명하는 일에 찬물을 끼얹었다. 가부장스러운 국가와 사회가 던져놓은 미끼를 덥석 물어 낚여놓고 뒤늦게 후회하게 만들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가 내게 이미 과거가 돼버린 다음에 알게 된 페미니즘이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에 힘을 보태준 언어인 것은 틀림없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게 힘든 일인데 표를 내지 않았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힘들면 안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힘들어서 죽겠다'라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미 일어났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두고 내가 페미니즘을 몰라서, 또는 무지해서 멍청해서 이렇게 된 거야 라고 간단히 퉁치기에는 른답지 못했다. 육아를 선택함으로 인해 10년 넘게 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국가와 사회, 내가 쏟아부은 비용들도 먼지가 되었다. 자본력이 약했던 나는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 탑을 쌓보다 다른 커리어를 선택한다. 아이를 셋이나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있다는 커리어.  



아이들이 제 손가락들로 별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나 둘일 때는 보통의 어머니 범주에 들던 여성이 아이가 셋이 되자 특별한 케이스에 담기는 것을 경험했다.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 엄마는 이웃 눈치를 많이 보는 약자가 되고 만다. 그러니 아이가 많아질수록 더 약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자본의 힘으로 가리지 않으면 무능력, 무책임으로 이어지는 험담을 감당해야 한다. 그 부모가 어떤 육아 소신을 가지고 키우는지에 상관없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둘을 넘어선 자식들은 더 적은 몫을 나눠가져야 하는 불쌍한 상속자가 되고 만다. '셋이나 낳고 키우는 대단한 엄마'라고 치켜세우는 엄지 뒤에 느껴지는 동정, 비난을 느끼면 움츠러든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sns를 두리번거린다.


어지러웠다. 스스로 선택을 했다고 믿었는데, 어떤 것을 무작정 쫓아 '그래 이건 해야 해'하면서 숙제하는 인생을 산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를 증명하는 길을 쫓아가다가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없기에 나를 찾아야했다. 증명해야 하는 '나'말고 내가 긍정하는 온전히 존재하는 나. 쓸모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주 안에서 존재 자체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내가 있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 쓸모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말고, 내가 놓친 나. 35년 생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철학적 물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셋째가 돌이 되었을 때 나는 쓸모없어지기로 했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일을 내 일상에서 걷어치우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보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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