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고 초가지붕거리 배경인 사극 안에서만 존재하는 나라? 나한텐 그렇다. 부끄럽지만 조선을 세운 사람이 이성계인줄은 알아도 '이'씨 왕가로 대물림 된 국가인줄은 몰랐다. 이순신, 세종대왕, 율곡이이, 신사임당(이이어머니), 이황에 이르기까지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조선은 이씨왕가) 자본이 왕이 되어있는 이 나라에 전신처럼 화폐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처음 의문을 가졌다. 왜 화폐속 인물은 모조리 조선시대인가? 그들은 왕도 아닌데 왜 다들 '이'씨가문 사람들인가?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역사위를 둥둥 떠다니기만 했던 내 발바닥이 연암이 딛었던 그곳을 내딛기 시작했다.
기행문이라곤 단 한권도 안읽어본 내가 기행문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연암덕분에!
열하일기가 쓰였던 그 곳에 서서 그 시대와 주변국의 상황이 내게 스며드는 경험. 장소화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함께 읽기'에 있었다. 다같이 한 곳에 모여 같은 글을 보고 소리내어 읽는 경험. 이것이 바로 200년 전 조선이 실체로 다가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이 망한지 10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열하일기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쯤 쓰였다. 그 시간은 세계역사목록를 펴놓고 어림한다면 엄청나게 짧은 시간인데 왜 내겐 큰 간격으로 다가왔을까?
백종현이 쓴 철학탐구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조선은 '고대국가'였다고 말한다. 유럽사에서 '중세'(1200~1600년)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근대(1600~1800년)는 '인간'이 신과 자리를 바꾸고 인간중심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은 자연을 숭배한 '고대'국가였고 일제강점기때 강제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며 6.25전쟁이 쓸어버린 한반도에 현대국가를 건설했다.
칸트에 대해 알아보고자 우연히 읽었던 이 책에서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100년동안 한반도가 얼마나 큰 격랑을 겪었는지 멀리 떨어져서 서양과 견주어 보니 500년넘게 걸린 일을 우리는 길게 잡아도 150년안에 패스트트랙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렇게 빠른 질주는 힘센 손으로 끌고 갔거나 내리막길일 때 밖에 나올수 없는 속도. 결코 주체적으로 역사를 쟁취했다고 볼 수 없다. 당연히 조선시대가 멀게 느껴질수 밖에 없다. 열하일기는 무식해서 길을 잃은 역사벌판에 기준점을 찍어주었다. 일단 여기부터 시작하자.
열하일기는 그런 고대국가(중세에 가깝다고 해두자) 조선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북경과 열하를 다녀온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놓은 기행문이다. 그 당시 엄중했던 정조의 문체반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묘히 제 뜻을 곳곳에 숨겨놓은 수작이라 많은 고전학자들이 연암의 글을 높히 평가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열하일기를 만난것을 계기로 공부하는 공동체를 직접 꾸리고 '연암식백수론'을 펴내는 책마다 예찬한다. 내가 열하일기를 완독하리라 마음먹었던 것도 바로 고미숙이 쓴 책을 읽고 나서였다. 그 때가 2년전쯤인데 책상앞에 앉아 호기롭게 열하일기 책을 펼쳤다가 3할도 못읽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생각해보니 책선택부터가 중요하다) 이 책은 도무지 혼자 읽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나 조선시대에 무지했던 나같은 어른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올해 늦여름, 사람냄새나는 책을 사고 싶어서 옆동네 책방을 찾아갔다. 책장에 꽂힌 열하일기 세 권 가운데 1권만 없는 것을 보고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안그래도 열하일기 후속수업이 책방에서 있을 예정이란 얘길 듣고 냉큼 신청했다. 그 계기로 연암과 조선시대 문학을 아우르고 있는 박수밀 선생님을 만나게 된것이다. 그 수업은 열하일기에 대한 수업은 아니고 연암박지원이 쓴 글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책을 바탕으로 하는 수업이었다.
꿈틀책방에서 박수밀선생님께 대여섯명이 강의를 듣고있는 모습
박수밀선생님 수업의 특징은 책이나 교재에 있지 않았다. 그 당시 조선의 풍습, 연암과 그 친구들의 에피소드, 그 당시 중국의 정치사를 아우르며 이야기보따리가 끝도 없이 열렸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마침 다른 책방에서 기획한 <열하일기 완독클럽 시즌2>소식을 들었다. 박수밀선생님이 비대면으로 줌을 이용해 일주일에 한번, 총 3개월에 걸쳐 열하일기 전권을 강의하고 완독하는 과정이었다. 수강신청을 하고 연암산문수업 마지막 날 우연히 연암글을 돌아가면서 낭독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눈으로 읽었을 때 와닿지 않았던 연암의 글들이 목소리와 만나자 고스란히 전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아! 이거였어. 낭독!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그 전율을 전했더니 다른분들도 맞장구를 치셨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연암강의가 있는 날 아침에 모여 읽어야 될 부분을 진도에 맞춰 낭독하는 낭독모임을 만들었다. 낭독모임 전날 낭독할 부분을 먼저 눈으로 읽고, 만나서 소리내어 읽고, 다른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삼독을 했다. 의문나는 글월, 와닿았던 부분들에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사람들이 콕 집은 글월에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 날 저녁엔 컴퓨터를 켜고 박수밀선생님이 준비한 강의를 들었다. 그러면서 조선은 고대국가가 아닌 멀지않은 과거의 삶으로 다가왔다. 참말로 신기했다.
모임사람들과 함께 열하일기를 읽고 함께 여행하고 완독에 다다를때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현재 완독클럽은 절반정도를 지나왔고 책은 세권가운데 1권을 끝마쳤다.
열하일기는 김혈조선생님이 옮기고 돌베게에서 출판해 1,2,3권이 있는 개정신판으로 준비했다.
이 글은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조선시대를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내가 낭독모임과 열하일기 책, 청운문학도서관이 주최하고 책방이음에서 기획한 <열하일기 완독클럽>을 비대면강의를 듣고서 개인적으로 남기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