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_열하일기 첫걸음, 도강록

이용후생, 먹고 살기 힘들고 바쁘면 책 읽을 시간도 안난다

by 땅콩

열하일기에 대한 자료, 책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나의 글은 낭독모임을 가운데 두고 40대여성들이 열하일기를 낭독하며 나눈 담론들과 역사에 이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개인적인 기록이라고 보면 되겠다.


도강록은 열하일기 첫 장으로 압록강을 건너며 쓴 기록이다. 아마 열하일기를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도강록만 겨우 읽고 포기를 했을 것으로 본다. 조선과 중국의 경계인 압록강, 그 강을 무사히 건넌다면 당신은 충분히 연암과 열하까지 갈 수 있을것이니 도강록에서 최대한 1780년대 정조가 다스리던 조선, 연암박지원과 친해지는 계기를 갖는 것이 좋다.


친해지는 방법으로는 유투브관련 강의를 듣는 것도 좋겠지만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조선시대 백수 연암을 현시대로 가장 잘 끌어온 청년백수담론이겠고, <열하일기 첫걸음>은 연암을 25년 넘게 연암을 공부하신 박수밀선생님이 쉽고 깊이있게 풀어쓴 열하일기 입문서이다.

<열하일기 첫걸음> 책에 들어있는 열하까지의 여정 지도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열하일기가 세계 최고의 기행문이라는 의견이 있고,
또 우리가 자랑할 만한 최고의 문학서라는 점에
많은 인문학자가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점이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학적인 성취인가에 대한 증거는 지금껏 잘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뛰어난 가치에 비해 열하일기는 여전히 고전의 한문 속에
갇혀 있으며, 지금 시대와 활발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
- 박수밀 <열하일기 첫걸음> 서문에서



열하일기를 읽으려고 애쓰다가 포기한 나를 정확히 꽤뚫는 지적이다. 아마도 함께 책 전부를 낭독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열하일기 곳곳을 콕콕 찝어주는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여전히 열하일기는 고전의 한문속에 갇혀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열하일기가 낭독모임과 토론으로 인해 이시대와 만나는 현장을 기록에 담을 생각이다.


압록강은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이므로 처음으로 중국여행을 하는 연암의 강을 건너는 심정이 사뭇 남다르리라. 그는 그런 제 마음을 자객 형가를 견주며 표현한다. 형가가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을 죽이러 가는 길이라면 응당 용기있는 자객이라도 살아돌아오길 기대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쉬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형가를 나무라던 연나라 태자 단.

형가가 친구를 기다려 함께 가려고한다고 했다는 <사기>의 이야기를 연암이 이렇게 헤아린다.


작가가 곧 형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벗을 끌어다가 이를 부연하여 '그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지고 사는 곳이 멀다고 말함은 형가를 위로하려 함이다. 또 형가가 혹 그 사람이 올까 걱정을 할 것 같기에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형가에게 다행으로 여기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열하일기1 41쪽>


이 부분은 사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의 원문을 알지 못하면 연암의 마음을 살피기가 어렵고 지나치기 쉽다.

열하일기에는 시경이며 춘추, 연암이 읽었던 동양고전들이 수차례 인용된다. 사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부분은 연암이 형가의 심중까지 헤아려서 '형가에게 다행으로 여기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라고 쓴 글월.

사기열전 원전이나 자객 형가에 대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이라 어디까지가 원문이고 어디까지가 연암의 생각인지 헷깔렸다. 이 부분을 가지고 모임분 중 한 분이 박수밀선생님께 여쭸더니 원문번역본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셨다. (선생님, 최고예요!)


<사기열전 상>에 수록된 자객 형가에 대한 이야기. 왼쪽사진 아랫부분에 형가가 답한 부분이 있다.

형가가 답한 다섯줄도 안되는 대화를 읽고 연암이 '그사람'에 대해 헤아린것이 실로 놀라왔다. 거기다 유득공의 시를 재치있게 덧붙인 연암의 유머도 돋보인다. 열하일기 형가를 헤아린 부분을 읽고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는 평생 한문학을 전공할 생각을 가졌다고 하니 우리가 물음표를 갖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글월이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5098239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땅 입구인 책문에 다다른 연암일행.

중국여행은 일평생 처음 해본 연암으로써 중국 동쪽 변방인 책문이 조선과 견줄수도 없을만큼 고급스럽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자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런 자신의 모습또한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연암. 열하일기 곳곳에 선비 연암보다 여행객 연암이 보이고 그 일면들에서 연암의 성격이 어떤지도 추측이 된다. 기행문이라기보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연암이란 캐릭터가 참 매력적인데 지루해질 수 있는 기행문이 유쾌하기 그지없다.


해외여행 경험이 별로 없는 내게도 외국 거리를 보면서 어째서 우리나라는 이토록 허름하고 멋대가리 없는가 시샘을 하곤 했는데 영락없이 연암도 느꼈던 모양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연암은 점포의 살림살이, 길을 정돈하는 모양새, 벽돌굽는 가마부터 쓰임새, 청나라 주택의 장점까지 모조리 눈여겨 보았다가 열하일기에 옮긴다.


"점포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고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고, 한 가지 일도 구차하거나 미봉으로 한 법이 없고, 한가지 물건도 삐뚤고 난잡한 모양이 없다. 비록 소외양간, 돼지우리라도 널찍하고 곧아서(...)

아하! 제도가 이렇게 된 뒤라야만 비로소 이용利用(이로운 쓰임새)이라고 할 수 말할 수 있겠다. 이용을 한 후라야 후생厚生을 할 수 있고, 후생을 한 연후라야 정덕正德을 할 수 있겠다. 쓰임을 능히 이롭게 하지 못하고서 삶을 두텁게 하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삶이 이미 스스로 두텁게 하기에 부족하다면 또한 어찌 자신의 덕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 열하일기1. 76쪽 -


도강록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이다. 내가 이부분에 절절히 공감하는 것은 지금의 내 처지를 너무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20대 먹고 살기 바쁠때는 절대 '공부'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백성들은 살림이 안정되고 먹고 사는게 해결된 다음에야 삶을 두텁게 꾸릴수 가 있다. 그런 다음에 바로 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인문학책도 읽고 싶은 것이다. 내가 뒤늦게 고전공부, 철학, 인문학에 빠진것도 먹고 사는 문제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리라.


낭독모임에서도 이부분이 뜨거운 감자였는데 '제도'가 선행되어야 하느냐, '생계'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또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내 경험상 생계가 먼저 안정궤도에 올라와야 되는것이 아닐까 했다. 집에와 생각해보니 제도교육(공교육)이 먼저 달라졌다면 내가 더 나은 20대를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철학수업이 초등고학년때부터 시행된다. 고등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논술문제로도 심도있게 다룬다고 하고 그나라의 '정덕'이 거기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대학시절 선배따라 노동자 시위현장에 참여한 이야기를 다른모임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들 일에 왜 대학생인 우리가 시위에 참여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선배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분들은 노동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고 목소리도 작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같은 사람들이 함께 해줘야 그분들 목소리를 키울 수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결국 제도교육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오래걸리는 일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지식인들, 기득권층, 먹고 먹고 사는 문제는 일단 해결한 우리가 생존의 위협을 껴안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야 하는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연암 또한 엄청난 비난을 받을 걸 알면서도 열하일기를 낸 것이 조선시대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이었으리라.


또한 그렇게 수십번 중국으로 사신기행을 다녀오고 이로운 점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제 일 아니라 여기는 관리들로 인해 한치도 나아지지 않은 조선백성의 삶은 참으로 안타깝다. 지식을 자신을 뽐내거나 변명하는데 쓰고, 되놈나라라고 청나라의 이로운 기술은 보지 못하고 깔보기만 한 그들이 정녕 그 시대만 있을까? 오늘날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뜰은 넓어 수백 칸이나 되었는데 오랜 비에도 진창이 되지 않았다. 바둑돌 또는 참새 알 크기의 물에 닿은 냇가이 돌이란 본래 무용한 물건이지만, 그 모양이나 색깔이 서로 비슷한 놈을 골라서 문 앞에 이리저리 깔아서 날아가는 봉황모양으로 만들어 진창이 되는 것을 막았으니, 이로 미루어 그들에게는 버리는 물건이 없음을 알겠다.



깨진 기왓장도, 길가의 돌도 주워다가 길을 다지고 벽을 장식해 이롭게 썼던 청나라, 연암이 열하일기에 그 자질구레한 것들을 죄다 기록한 것이 내게는 자국 백성에 대한 안타까운 넋두리라고 여겨졌다.

도강록에 수많은 밑줄이 있지만 당신이 더 많은 걸 찾아내길 바라며 여기서 줄인다. 다음 여행지는 연암과 중국선비들이 글로 나눈 필담과 우정이 돋보이는 심양, <성경잡지>이다.




※ 많이 부족합니다. 틀린 내용, 역사적 사실이 바르지 않는 내용은 지체없이 지적해주시고, 다양한 의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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