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_길위에서 말걸기<성경잡지>

중국선비와 조선지식인의 밤샘필담!

by 땅콩

우리가 작은 땅, 그러니까 반은 바다에 걸쳐있고 반은 대륙에 걸쳐있지만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혀있는 아주 작은 땅 '반도'에 살고 있음을 열하일기를 읽을때마다 체감한다. 사신단이 압록강 너머 책문을 지나가서 처음으로 맞는 대도시가 성경(심양)이다. 심양은 요동벌판이 있는 곳으로 연암이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에 이르러 크게 통곡하며 울어볼만 하다고 탄성을 자아냈던 곳이다. 더불어 요동은 군사요충지로서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이 벌판에 새겨져있단다.


요동 들판이 편안하면 나라 안이 잠잠하고 요동 들판이 한번 시끄러우면 천하에 전쟁이 일어나 일진 일퇴하는 북소리, 징소리가 번갈아 울렸음은 무엇때문인가? 진실로 천 리가 일망무제로 툭 터진 이 평원과 광야를 지키자니 힘을 모으기 어렵고, 버리자니 오랑캐들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대문도 마당도 없는 경계인 것이다.
-열하일기 7월 10일 기록
오른쪽 큰지도(한눈에 펼쳐보는 세계지도 그림책)를 보면 중국대도시 8할이 모두 조선과 맞닿은 푸른바탕 동쪽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선양'이라는 곳이 심양인데 현재인구 720만명으로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공업도시이다. 선양(심양)에서 베이징(북경)으로, 베이징에서 만리장성을 넘어 북쪽에 있는 열하로 가는 사신단 일정을 기록한것이 열하일기다.

요동벌판에서 싸움이 벌어질때마다 그 아래쪽 변방국가인 조선도 넙죽 엎드려야 하는데 조선이 건국된지 200년뒤 쯤 일본이 쳐들어오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곤경에 처한 조선은 명나라의 도움으로 조선을 지킬 수 있었으니 명나라를 섬기는 마음이 어찌 깊지 않았을까? 임진왜란이 있은지 50년도 안되어 되놈, 오랑캐라 일컫는 청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침략했는데 그것이 병자호란(1636년)이다.


이부분에서 고백하자면 조선건국1392년, 임진왜란 1593년, 병자호란 1636년이 내겐 그저 시험에 나와 암기해야하는 숫자였다. 절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없었는데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조선 500년이 이렇게 연결되었고 길지않은 500년안에 중국(명나라) 어떻게 조선과 이어져있는지 멀리서 조망할 수 있었다. 으하하 나한텐 아주 대단한 소득이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해야되는 것이로구나. 이야기로! 그당시 사람들을 통해서!

열하일기는 1780년에 쓰였는데 명나라가 망한지 10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조선지식인들 사이에 뿌리깊은 대명의리는 사라지지 않아 연암이 혀를 끌끌 찼던 것이다. 의복부터 제도 많은 부분을 명나라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에게 있어 변발을 하고 소매를 좁게 만든 청나라 의복제도는 오랑캐의 상징이었다. 청나라사람은 무조건 되놈이라고 혐오부터 드러내고 봤으니 연암이 성경에서 본 기술발달을 조선에 견주어봤을때 느꼈을 안타까움이 성경잡지 한장 한장마다 가득이다.


<성경잡지>편의 백미는 연암과 상인들이 나눈 필담과 우정에 있다. 세종대왕이 조선 초기에 훈민정음을 만들었음에도 조선지식인들 사이에 훈민정음은 아녀자나 쓰는 언문으로 취급했고 기득권은 모두 중국문자인 한문을 썼다. 청나라에 가서 말은 안통해도 글은 통하는 사이. 현지인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해외여행을 갔을때 항상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바로 언어였다. 말도 글도 안통해서 손짓발짓 해가며 설명하는것이 부끄러워 눈으로만 구경하고 온것이 전부인 내 외국여행의 전부. 연암은 붓과 종이를 늘 갖고다니며 낯선이에게 말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선과 청나라정치를 꽤뚫고 있는 지식인 연암으로써 청나라선비가 나라에 품는 불만이 궁금했을 터. 비분강개한 선비의 노래나 한곡 불러달라며 은근슬쩍 떠보지만 말한마디 잘못해서 목이 달아나는 엄한 형국에 정치얘기가 쉬이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밤을 새워 연암과 이야기하기고 강의를 청하고 음식을 덥혀 모시고, 가짜물건에 속지 않는 비법도 상인에게 전해듣는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벗의 소중함을 아는 그들의 가치관이 너무나 멋졌다.

우리가 벗에 대해서는 모두 지극 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한 명의 스승이 있다'고 했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다'고 했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다'라고 했으니 이보다 지극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사람이 나서 평생 친구를 사귀는 일이 없다면 도대체 재미난 흥취가 없을 것이니, 옷이나 잘 입고 먹는 것이나 밝히는 자들은 이런 맛을 모른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이런 관계에 굶주려있나. 우스갯소리로 현대인은 돈으로 모든걸 살 수 있지만 친구는 적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독서모임, 낭송모임을 다녀오면 뭔지 모를 뿌듯함과 성취감이 가득차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곤 했다. 처음보는 사일지라도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리를 마련하는 성경 상인들의 용기가 나는 참으로 부럽다.


학식도 있거니와 식솔들과 생이별을 하고 이익을 쫓아 먼 타향땅에서 장사꾼 노릇이나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연암의 물음에 가상루에서 만난 상인의 답이 예상외다. 공부해서 작은 벼슬을 한다해도 고향을 떠나는 건 매한가지, 오히려 정쟁에 휘말려 이러저리 채이고 결국엔 파직되거나 사형당하기 일쑤인 관리가 무엇이 부럽겠냐고 답한다. 사-농-공-상 순서대로 상인을 가장 하급취급하던 시대의식에 이 상인들 이야기로 하여근 상업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연암은 전달하려는 것.


우리야 학문도 거칠고 재산도 흩어져서 벼슬해서 출세할 기대는 진작 끊었지만 그렇다고 피땀 흘려 가며 몸이 앙상해지도록 곡식 낟알을 수확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고향 우물을 떠나지 않고 죽더라도 제자리를 지키며 마치 여름벌레가 겨울 얼음을 모르듯 한 군데 갇혀 산다면, 이는 일찌감치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상루필담 219쪽에서


이것이 비단 청나라만의 일이었을까, 무엇이 중한지 따지기를 제쳐두고라도 이 민중의 고민은 200년뒤인 오늘날에도 같은 선 위에 존재한다.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면 식량위기라고 걱정하지만 말고 농민이 농사만 짓고도 먹고살 수 있게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이 되기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걸 안다면 다른 노동환경도 공무원에 상응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제도적 받침이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순서 아닐까? 연암이 타임머신을 타고 200년뒤에 이 나라를 본다면 내가 꿈꾸던 세상이로다! 할 수 있을까?



중국상인들이 조선사람들은 값이 싼것만 좋아하기에 진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글을 읽고 옛직장에서 들었던 얘기가 떠올라 낭독모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중국제품이 값싸고 질이 떨어지며 가짜물건밖에 없다고 하지만 중국도매시장에 다녀온 직장상사가 중국상인에게 들었다며 이런 얘길 해준게 기억났다.

"한국상인은 싼것만 좋아해서 한국상인이 오면 값싼것을 내놓는다. 질은 따지지도 않고 가격만 보고 사간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상인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질좋고 좋은 상품을 찾기 때문에 유럽상인이 오면 좋은 물건을 내놓는단다. 결국 한국사람은 한국 도매상이 우리한테서 저렴하고 질낮은 물건을 사가서 파는 것 가지고 중국상품이 허접하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잘못이 아니라 한국상인에게 있다"고 일갈한다.


우리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일 뿐이다.
선택은 소비자에게 있다.


급격하게 근대화를 이루고 이만큼 잘살게 된 것 밑바탕에는 '싸게 싸게'문화, '빨리 빨리'문화가 있어서 근대화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휴우증은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만큼 많고 심각하다.

연암에게 예를 다하며 배웅하는 길에 밤샘필담을 나눴던 상인이 쓴 편지한구절을 읽고 장소가 어떠하든 그곳에 있는 인간 하나하나를 좁은 틀에 가둬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지금 그대를 북경으로 보내며, 이를 잊지 못해 제 어리석은 정성이나마 곡진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타국의 군자가 뒷날 고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에는 제대로 된 인간이 도무지 없다고 왜곡하지 않기를 바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열하일기는 기행문이다. 목적지를 향해가며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 이제 1권만 읽었는데도 나는 연암이 만난 사람들, 연암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 눈으로만 보고 카메라에만 담아오는게 여행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이라는 것을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절절히 느낀다.


전날 밤에도 대접을 받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부족했는지 다른 가게 사람들을 더 불러 이튿날 또 모여앉은 연암과 중국상인들. 과분한 환대와 성대한 차림에 부담스러워 하는 연암에게 비생이란 자가 이렇게 말한다.


"산에 좋은 나무가 있으면 오직 목수가 헤아린다는 말처럼,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바입니다. 백로의 모습처럼 외국의 훌륭한 현인이 이렇게 오셨으니 피차 모두가 싫어하지 않을 것이며, 열두 행와에는 본래 정해놓은 약속이 없습니다. 사해가 모두 동포인데 누구에게는 후하게 하고 누구에게는 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열하일기1권 <일신수필>에 대한 글이 이어집니다.




※ 많이 부족합니다. 틀린 내용, 역사적 사실이 바르지 않는 내용은 지체없이 지적해주시고, 다양한 의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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