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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ul 17. 2021

톨스토이가 묻는다. <이반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 책은 처음이다. 소설가 권여선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손에 꼽길래 1권을 사놓고 들춰보지도 못했다. 이책은 순전히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서 가능했다.


인문학이 중요하구나, 느꼈던 때가 3년전이다. 그 때 많은것이 달라졌다. 페미니즘을 알았고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홍세화, 고미숙 선생님 책을 읽으며 인문학과 고전읽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홍세화가 쓴 <생각의 좌표>에서 톨스토이를 인용한 글귀가 인상적이라 옮겨 적은적이 있다. 3년전 공책를 펴보았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별 것 없는 이 단순한 내용이 통렬하게 나를 꾸짖었다. 내가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끌려다니면 바로 이순간,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고 만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창비,2012)는 톨스토이 중단편중에 걸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세상이 정의해놓은 대로 살아오며 판사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 중년이 된 이반일리치. 어느 날 그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  초반 타인의 시선으로 그려지던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중반부터 이반일리치 내면 속으로 깊게 들어간다. 톨스토이는 삶이 가득한 곳에서 체면치레하느라, 자신만 돌보느라 급급해 ‘죽음’ 지워버린 근대인의 삶을 그리며 모순된 인간상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이반일리티치는 몸으로 전해지는 신체적 고통을 겪고 나서야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잘 살아왔는지 언제 행복했는지를 떠올렸을 때 현재가 아니란 사실은 근대인의 고민과 맞닿아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이 현재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행복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살다가 죽음앞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다.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지 자꾸 묻지 않으면 현재는 자꾸 미래에 저당잡히고 만다. 홍세화가 톨스토이의 문답을 끌어와 내게 상기시키던 것이 그것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지 않으면 습관대로 살고있는 자신을 깊게 돌아보지 못한다. 돌아본다고 누구나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이반일리치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았을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병석에 누운 뒤로 가족과 주변인들을 볼 때마다 증오에 치를 떠는 자신을 바라보며 진실을 직면한다. 그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며 그런 세계를 만들고 살아왔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p.112)”     


이반일리치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돈도, 집도, 직업도 ‘행복’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삶은 ‘현재’와 ‘내 곁의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자꾸만 부딪히는 사회안에서 ‘죽음’을 갖다놓고 톨스토이는 자꾸만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톨스토이의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감탄한다. 먼지쌓인채로 쳐박혀있는 그의 고전을 이제 읽을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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