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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ul 17. 2021

6학년에서 멈췄던 글쓰기, 선생님께

큰바위얼굴에서 호밀밭의 파수꾼까지, 인문학

   

먼저 선생님 반했다는 당연한 고백을 하고 시작하렵니다. 남들도 그러겠지만 당연히 선생님의 많은 것을 찾아보고 SNS와 쓰신 책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글쓰기 수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같이 모임하는 다른 선생님들의 입에서 가끔 선생님 이름이 거론되곤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알고, 나만 모른다는 소외감에서 궁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세계가 그들로 인해 똑 똑 제게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물방울이 만드는 파장을 보채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첫수업에서 ‘작가’라는 위압감에 눌린채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땠을 거 같으세요? 제 혼을 다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지식인을 만난적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합니다. 멋진 어른을 눈앞에서 본 건 최초였습니다. ‘뇌가 섹시하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이것은 제가 알지 못하는 회로였고, 덕분에 새로 뚫리게 된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 뿐만 아니겠지만 선생님은 다른 수강생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생님께 글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닥을 단번에 들킬것 같은 끔찍함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글만 볼 뿐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를 자세히 몰랐을 때가 더 편한 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 속에서 그 ‘편함’을 무기로 제 속에 꽁꽁 숨어 살았습니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 내 감정을 지키고 내 바닥을 보이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이란 것은 꾸며낼수록 바닥이 치졸하게 드러나기에 솔직하게 쓰는게 초라하더라도 깔끔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초라함을 택한 용기를 읽으시고 제 글을 칭찬해주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편지를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슬아가 쓴 <부지런한 사랑>에서 편지글을 읽다 갑자기 펜을 들었습니다. 쓰다보면 알게 된다는 선생님 말 믿을 뿐입니다. 선생님이 하신 말과 글이 3개월 넘게 제 삶을 관통하고 있어서 이제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어째서 나는 이 사람에게 끌리는가? 나는 인간에게 끌리는 것일까,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인문학에 끌리는 것일까? 아무렴 어떻습니까? 소유하고 싶은 욕구도 아니고, 철저하게 파헤쳐서 속속들이 알고 싶다는 욕망도 아닙니다. 이것은 제 마음이 가리키는 어떤 이정표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은 세 살 때부터 글을 읽으셨다고 했고 예순이 넘으셨으니 60년 가까이 글을 읽고 쓰고 살아오신 거지요. 저는 반대로 여덟살때 처음 내 이름을 쓰고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촌 대가족 안에서 글보다는 구술문화로만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문자문화로 살아온 선생님은 저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인 거지요. 나도 저런 언어를 갖고 싶다라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너새니얼 호손이 쓴 <큰바위얼굴>을 학교 다닐때 교과서로 읽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나중엔 ‘큰바위얼굴’이 된 어니스트가 신기해서 발췌된 부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때 19세기 문학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 제가 선생님이 강의 때 추천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어땠겠습니까? 콜필드가 친구 글쓰기 숙제를 해주면서 피비의 글러브를 언급할 때 감이 왔습니다. 이제 한 번만 읽고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으로 거듭났구나.


주인공 콜필드가 지켜주고 싶어했던 피비의 세계. 20년 전 저는 그 세계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했던 콜필드였습니다. 39년의 절반을 호밀밭에서, 나머지를 밭 너머에서 살아왔습니다. 제 글이 자꾸 그 세계를 호출하고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고 알았습니다. 떨쳐버리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어서 쓰는 거였습니다. 잃어버리기 싫은거지요.


제 글쓰기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라는 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제 성장이 6학년에 멈춰있기 때문입니다. 해 지난 미술 교과서와 음악 교과서만 껴안고 지냈던 제 글은 문법이 엉망이었습니다. 빨간줄이 너무나 많아서 제 글은 제출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글쓰기는 ‘피비의 세계’를 기록해놓고자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열심히 지우개자국을 남겨가며 쓴 글이 백일장에 출품되지 못해서 속상했을까요?그 때문이 아니란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글방을 했다던 이슬아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지 못해서 제 글씨는 삐뚤어졌습니다. 그래서 ‘큰바위얼굴’은 잊혀졌습니다.

      

3년전에 선생님이 이 고장에서 인문학강독회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때 사람들과 인문학을 공부하고자 이곳에서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간을 수평으로 느낄 때가 간혹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딸이 미래의 아버지가 보낸 신호를 느끼던 것과 같이 열세 살 때와 서른세 살이 수평이 되어 서로를 눈치챌 때가 있습니다. 서른아홉의 내가 쉰아홉의 나를 떠올릴 때 겹쳐지는 큰 바위 얼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얼굴의 옆면을 서른아홉의 내가 조금 눈치챈 것 같습니다. 같은 얼굴이 되긴 어렵겠지만 그 얼굴 쪽으로 몸길을 내보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에 핑계를 대보고자 제게 더 편한 구술성을 살려 편지를 써봅니다.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뵐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선생님에게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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