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빵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 Jul 29. 2021

코로나4단계, 여자의 병원나들이

어머니와 함께 했던 날을 기록하다.

“손00 환자분 방사선실로 검사받으러 가세요”

“저...선생님. 제가 시골에서 올라와 병원길을 모르는데 데리고 가줄 수 있을까요?”

여자는 아까 둘째 딸과 병원문 앞에서 헤어졌다. 코로나 4단계. 어떤 보호자도 입원 병동 출입을 할 수 없다. 칠순이 다되도록 병원입원을 해본 적 없는데 이곳은 생전 처음 오는 큰병원이었다. 한참을 헤매다 간호사에게 병실 안내를 부탁했다.  방사선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덜렁 혼자 남겨졌다. 수술을 앞두고 긴장한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돌고 돌아서 겨우 제 이름이 붙은 병실을 찾아올 수 있었다.      


마취가 풀리고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어깨를 지탱하는 세개의 힘줄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끊어졌고 그걸 봉합하는 수술이었다. 지난 겨울 바다에서 미역줄을 잡아 올릴때 무리한 것 같았다. 바람이 많이 부니까 나가지 말자고 하는 아들을 게으름을 피운다고 쥐어박고 나간 바다였다. 그러게 고집을 피워서 이 사단이 났다고 아들 진작에 일을 줄이지 그랬냐는 딸들 핀잔을 들었다. 수술 전에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오고 큰 딸, 아들에게서 줄줄히 전화가 왔다. 수술 경과는 좋았다. 인공 힘줄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여서 다른 힘줄을 이식해 이어붙였다. 그래도 어깨 수술 치곤 대수술이라고 했다. 혹시나 응급상황에 대비해 둘째 딸네 가까운 병원으로 잡았다. 수술실 입실부터 회복실까지 모든 과정이 보호자에게 문자로 발송된다.    

 

말도 못할 통증이 어깨부터 온몸을 강타했다. 간호사가 와서 마스크를 적시고 있는 여자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더니 무통 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목 말랐다. 금식한지 2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저녁이나 되어서야 죽이 나온다고 했고 그때부터 물을 먹을 수 있다. 어차피 지금은 물컵 들 힘조차, 갖다 줄 사람도 없다. 벨을 누르면 간호조무사가 도와주러 온다고 했다.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둘째 딸이 신신당부했다. 눈치 보지 말고 불편하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벨을 누르라고. 보호자를 못들어오게 하는 대신 그 분들이 엄마를 도와줄 사람이고 병원비에 다 포함되있다고 했다. 병원이 처음이라 벌써 여러번 눌렀던 버튼이었다.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벨소리에 응답하느라 바쁜 간호조무사들이 우리 둘째 딸 같아서 쉽게 누를 수 없었다.

    

수술 잘 끝났냐고 둘째 딸이 전화를 했다. 말이 둘째지 여자한테는 첫애였다. 전부인의 딸인 큰딸이 아무리 살갑게 잘해줘도 미안하면서 어려웠다.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듣자 둘째 딸이 병원을 예약하고 함께 나서주었다. 자신 때문에 고생했을 둘째 딸에게 고맙지만 이럴때는 의지가 되었다. 셋째 딸한테 전화가 온다. 얼마나 아프냐고 묻는 딸애 목소리가 반가워서 둘째한테는 못했던 엄살을 부렸다. 자식을 일곱이나 낳았고 바닷일을 겸하느라 고통에 단련된 몸이었지만 그보다 더했다. 눈물이 절로 나는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화기 너머로 셋째 딸이 코를 탱탱 풀어가면서 재잘재잘 잘도 떠든다. 두 딸은 수술 며칠전 여자를 병원에 데려갈려고 고향에 내려왔다. 둘째딸은 집안살림을 잘하고 셋째는 바깥일을 더 좋아했다. 수술하면 최소 일주일은 집을 비우는데 한창 익어가는 고추를 아들 혼자 어찌 딸까 걱정되어서 혼자 부지런을 떨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셋째딸이 새벽부터 나랑 고추를 함께 거두었다.


코를 훌쩍이던 셋째딸이 퇴원하고 2주는 제 집에 머물다가라고 한다. 시골 내려가 밭이 보이면 어찌 일을 안할수 있겠냐며 남동생도 혼자 농사일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지 아부지 죽고나서 동생과 대판 싸우고 전화만 하면 흉을 보던 딸애였다. 둘째 딸한테만 신세지는 게 미안했는데 이 참에 셋째 살림하는 꼬라지를 좀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들이 초등고학년이라 절간같이 조용하던 둘째딸집에서 셋째딸집에 오니 왁자지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는 책 안읽어도 심심할 겨를은 없겠구나. 어깨 들어올리기가 아직은 좀 불편하지만 오늘은 혼자 씻어볼 요량이다. 묻지도 않고 옷도 벗겨주고 내 머리도 감기고 척척 말려줬던 둘째딸과 지내다가 눈치없는 셋째딸을 보자니 어이가 없다. 누가 돌봄을 받으러 온것인지, 제 언니가 신신당부했을텐데 환자의 상처부위 소독과 연고바르는 것도 자주 깜박한다. 언젠가는 수술한 어깨가 아닌줄 알고 아픈 어깨를 주물렀다가 내 입에서 억소리가 튀어나왔다. 다섯살배기 손자가 나랑 많이 놀아주었다. 같이 시골에 내려가자고 했더니 따라갈기세다. 내일 병원에서 수술부위를 다시 한번 진료하고 시골집으로 간다. 둘째딸보다 막내딸보다 더 작은 집에 사는 큰 딸집에는 부러 안가고 전화만 했다. 제 아버지가 올라올때마다 큰아들과 큰딸집에만 머물렀다하니 내가 안간다고 서운해해지 않겠지. 언제 만들었는지 둘째딸이 밑반찬을 한가득 만들어 내려가는 자동차에 실어준다. 큰병원에 입원도 처음이지만 딸 들 집에 2주나 돌봄만 받으면서 머물러본것은 처음이다.  나 내려간다고 서운해했던 다섯살손주 얼굴이 벌써 아른거린다.

몇 달 뒤 차도를 보겠다며 다시 딸들집에 올라왔다. 벌써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간단히 진료를 보고 바로 셋째딸집으로 갔다. 갈비집을 예약했다고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밥을 먹고 나서는 같이 쇼핑을 가자고 한다. 저번날 수술직후 머무를때 내가 흉봤던 것을 알았는지 이번에 준비를 좀 했나보다. 이번엔 나도 좀 준비를 해왔다. 속옷을 사가야겠다고 했더니 가까운 대형마트에 나를 데리러 가길래 거기서 두 딸들에게 옷을 사주었다. 젊은 사람들 옷 파는 가게에서 두 딸들은 엄마 옷을 고르고 저도 입어보면서 깔깔댔다. 아들이 바닷일 할 때 입을 가볍고 따뜻한 옷도 몇 벌 샀더니 몇 십만원이 훌쩍 없어졌다. 쇼핑백 여러개를 거실에 들이면서 셋째딸이 철없이 그런다. 그 말이 아프면서도 기쁘다.


  엄마가 아프니까 처음으로 딸 들집에 오래 있다가고, 이렇게 우리랑 쇼핑도 다니고.
아니다, 아빠가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나는 엄마가 새로 생긴 기분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숙제를 못내던 날 썼던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