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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Aug 23. 2021

글쓰기 숙제를 못내던 날 썼던 글

온몸으로 겪는 육아와 돌봄, 글쓰기에 대해

밥을 짓는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엇을 해서 먹이지?

부엌으로 향하는 발바닥이 저녁노을에 쩍쩍 달라붙었다. 밥짓는 시간 1시간, 밥먹는 시간 30분, 설겆이하는 시간 30분. 밥먹고 잠깐 저들끼리 노는 시간까지 합치면 두시간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읽고, 잠들고 나면 글을 쓴다. 그마저도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하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볼까? 하루가 26시간인 것처럼 길어진다. 새벽인데 벌써 해가 뜨고, 엄마따라 아이들도 일찍 일어난다. 보조 바퀴처럼 내 생활과 패턴을 따라다닌다. 책 읽을 시간이 안 날때는 아이들 밥 차려놓고 그 시간에 읽었다. 자식 얘기말고 책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고, 저녁에는 컴퓨터를 켜고 바깥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도 배 고프다고 하면 일어섰다. 남편 퇴근시간이 되면 분침이 초침처럼 빨라졌다.

     

책읽는 순간이 즐거웠다. 다른 세상으로 훌쩍 떠날 수 있으니까.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았다. 블로그나 SNS에 글을 쓰면 ‘좋아요’에 상관없이 내 글을 다시 또다시 읽으면서 좋았다. 옛날 글을 읽으면서 내 기분에 몰입하는 내가 좋았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다. 내 글로 내가 치유가 됐다. 울었으면서 또 찡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갑자기 글을 못쓰겠다. 어떤 글을 쓰고 싶다가 가슴이 울렁거린다. 단어들이 입안에서 자꾸 넘어졌다. 딱딱하게 다문 하얀 이빨들에 걸렸다. 매운것을 먹으면 쓰라려서 못쓰고 뜨거운 것을 먹으면 홀랑 벗겨져서 못썼다. 그것들을 느끼지 말고 뱉어버리고 싶은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가슴 언저리에서 울렁울렁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파도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오른다.   

   

5시 20분.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깬다. 어제 잠자리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세 장도 읽지 못하고 덮혔다. 그 책을 가져와 책상 앞에 앉는다. 내 어깨가 날씨 눈치를 본다. 날씨가 흐리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어깨가 아프다. 며칠 전부터 눈꺼풀이 떨린다고 했더니 ‘며칠 전? 늘 그런 것 아니었냐’고 한다. 그 사람에게 익숙한 언어가 되버린 내 고통이 입안에서 또 넘어진다.      


아이들이 하나 둘 깨서 몸을 부빈다. 컴퓨터를 끄고 아이와 뒹군다. 큰 방, 작은 방, 거실, 부엌, 책상 방까지 모조리 빗자루질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엄마에겐 놀아달라고 하고 청소하는 엄마는 내버려둔다. 오랜만에 싱크대도 바닥도 하얗게 닦아놓았다. 등교시키기 전에 설거지와 빨래까지 모두 마쳤다.    

  

오늘은 써야 내일 보낼 수 있어. 아이들 학교 가 있는 세 시간 동안 쓰는거야. 침을 꼴깍 삼키고 아이들과 나선다. 집에 가는 길에 동네 언니들을 보았다. 내게 커피를 자주 샀던 언니와 막내에게 제 아들 옷을 물려준 언니였다. 집으로 곧장가야지, 해놓고 커피를 샀다. 아이들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오가고 부모님 이야기로 흘러간다. 뇌혈관 수술을 받은 아내를 퇴직하고 16년동안 보살핀 아버님, 어머니가 항암치료 12차까지 할때 애 키우며 병간호하면서 맘고생 했던 언니. 화장기 없는 얼굴 위에 새까만 기미들이 별처럼 빛난다.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니 만난 김에 막내 신발을 챙겨가라고 했다. 모른척 할까 고민했던 속마음을 얼른 구겨서 넣는다.


 아, 미용실을 예약했었구나, 컷트만 하면 되니까 12시까지는 쓰고 나가자.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안타까워 못쓰고 아이들 하원시간 다 되서 미룬다.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놀리느라 못쓰고, 간식을 챙기느라 책상앞을 떠난다. 날씨가 흐려서, 더위를 먹어서, 책 먼저 읽어야 해서 못쓴다.

     

오딜롱 르동 <나체의 여인 습작 5점> 47.3 x 31 cm

베란다 식물등이 켜졌다. 시들시들한 라벤더, 잎이 떨어지는 강낭콩,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진딧물로 황폐해진 바이덴스, 성장을 멈춘 토마토와 옥수수 모종. 가장 큰 나무였던 해피트리는 불행트리가 되었다. 도움이 될까 싶어 뒤늦게 병든 식물들을 모아놓고 식물등을 달았다.


지난해 봄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 때였다. 나라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으로 식물을 들였다. 집안에 발이 꽁꽁 묶인 나는 내 도움 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매달렸다. 몇몇은 죽었고 나머지는 살아남아 치료를 받고 있다. 해피트리는 전염병을 떠안고 나를 살려냈다. 병실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박 준의 시집을 꺼내서 읽는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온몸으로, 온몸으로’를 발음해보았다. 입이 오그라들면서 볼이 홀쭉해진다.

온몸으로 엄마를 원하는 막내가 함께 놀자고 잡아 끌었다. 열 살 된 딸아이도 한쪽 겨드랑이로 쏙 파고 들어왔다. 잠깐 졸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 밥짓고 상을 차릴 시간이다.   

   

다 내려놓고 고기를 구웠다. 아이들이 신났다. 소주도 한 병 꺼냈다. 너는 내가 병이 들면 퇴직하고 간호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해야 된다면 하겠다고, 닥치면 하지 않겠냐며 남편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간병할 것 같냐고 물었다. 할 것 같다고 남편이 말했다. 양육과 돌봄과 간호와 간병을 생각했다.

     

“당신은 약속한 집안일 외에는 신경쓰지 않아. 당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할 사람이 있으니까. 아이를 돌보는 것이 똥 닦아주는 것만 있는게 아니잖아. 아이가 들고 온 책을 거절한다든가, 엄마가 나갔다고 무조건 테레비를 틀어주거나, 시끄럽다고 울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 소주 한잔을 삼킨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그 시간을 겪을 수 있냐는 거지. 이런 것이 돌봄이고 간병이라면 할 수 있겠어?”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고, 그것은 다른 문제라고 그가 말했다. 아픈 어른이 아이와 어떻게 다른지 각자의 크기를 재보지 못한채 소주 한병을 비웠다. 그가 곁들인 소세지는 너무 짰다.      


밤늦게 식물등이 꺼졌다. 해피트리에 생긴 싹이 얼만큼 자랐나 확인한다. 성장을 멈춘 식물들이 조금이라도 자라고 있다는 걸 믿어야 했다. 부족한 햇빛, 좁은 베란다, 움직일 수 없는 화분들이 일렁이다가 캄캄하게 차올랐다. 오늘도 글을 못썼다고, 꺼진 컴퓨터 앞 일기장에 휘갈겨 쓴 글씨들이 초록 이파리처럼 솟아오른다.

책상방 너머엔 고기 구웠던 냄새가 가득하다. 식탁과 싱크대는 말끔히 치워져 있다. 부엌 바닥이 고기 기름 때문에 미끌거렸다. 내 곁에서 잠든 아이를 이부자리에 옮겨놓고 걸레를 빨았다.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열 막내가 부엌에서 미끄러지면 안되니까.



한창 글쓰기 수업을 받을 때, 2주마다 글을 써서 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던 때가 있었다. 왜 못쓰는 지 그걸 써보자고 썼던 글이었다. 하루를 온전하게 기록한 글인데 제출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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