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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Oct 13. 2021

<서양미술사>를 읽은 전공자들의 이야기

비정기 미술간행물 아트콜렉티브 <소격>의 #5 곰브리치

아트콜렉티브 소격은 비정기 미술간행물이다. 9명의 예술관련 미술전공자들로 꾸려진 구성원들이 한 주제에 대해 나눈 글과 생각들을 170쪽짜리 작은 책자로 만나볼 수 있다.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를 완독해보겠다고 나섰더니 책방에서 마침 추천해주었다. 서양미술사 정말 스테디셀러인가보다. 읽을려고 샀다가 안읽은 사람도 태반이고.  


<서양미술사>를 5장까지(그리스, 로마미술) 읽고 나서 <소격>을 들춰보니 술술 잘읽힌다. 미술사학자 홍지석이 쓴 글 [곰브리치 학창시절]에 가장 많은 밑줄을 그었다. 곰브리치는 유대계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피아니스트였다. 예술이 넘쳐흐르던 '세기말 빈'의 영향을 받아 곰브리치는 어릴때부터 미술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고 자연스레 미술사를 전공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가 받은 교육에서 부러운 것은 역시 대학교에서 스승 슐로서가 진행한 3개의 미술세미나다. 바사리의 미술책으로, 미술관에서, 마지막엔 이론적문제를 다루는 세미나까지... 슐로서는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을 동료처럼 대우해주며 그들의 참신한 생각을 응원해주었다고 하는데, 곰브리치는 강의보다 토론하는 세미나가 더 즐거웠다고 한다.


<서양미술사> 첫장, 그러니까 서문을 읽자마자 놀란건 곰브리치의 글솜씨였다. 서문을 이렇게 잘쓰다니. 나처럼 미술은 어려운 용어 잔뜩, 모르는 역사진열, 유식한체하는 비평가들의 글들에 주눅이 들어 미술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악습을 곰브리치는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미술세계를 발견하게 된 10대들에게 좋은 입문서"를 자칭하며 만들어진 것이 이 책이었다. 물론 미술이 거리에 널려있는 유럽에게 이책이 아주 쉬운 입문서일테지만, 우리나라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는 이 책 완독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쇄가 거듭될때마다 추가된 도판에 대한 설명을 덧붙서문이 끝나면 '미술과 미술가들'에 대한 서론이 열 장이나 된다. 본격적으로 도판이미지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대체로 곰브리치는 마지막장까지 모든 미술을 극찬하는 모양이다. 선 질타를 보기 힘든 '착한 입문서'라고 이연식작가는 말한다. 나 역시도 곰브리가 수려하고 명쾌하게 서술하는 부분들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설득 당하고 있던 터였다. 내 태도를 소격의 필자들을 보며 반성했다. 비판이 생기기 힘든 입문의 입문수준이라 저자에 대해 <서양미술사>의 장단점을 짚어가는 <소격>의 글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후반부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코너는 9명의 필자들이 곰브리치와 <서양미술사>책에 대한 솔직하고 나눈  토론을 옮겨놓았다.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부분이다. <서양미술사>가 잘 팔리는데에는 곰브리치의 필력, 미술사를 '에세이'처럼 쓰는듯한 그의 솜씨가 한몫하지 않았겠냐고 소격은 말한다. 미술작품에 대한 사견은 다양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깊이있게 다루지 않는 것도 지적한다. 영어제목이 <The story of art>인데 history가 아니고 story인 이유가 거기에 있고 동방미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시피(7장을 빼곤)하는데 국내제목이 <서양미술사>인 까닭이 아닐까. 소격 덕분에 <서양미술사> 6장부터는 너무 퐁당빠져서 읽지말고 비판적인 시선을 늘 의식하며 읽어보겠다.


아쉬우니까 마지막장<신입전공자와 경력비전공자, 서양미술사를 말하다>에서 책꼽문하나,


지연 : 나도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이 어떤 비판을 할지 긴장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는지 걱정되거든. 그런데 이 책은 비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거리낌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쓴거야. 이견이 있는 사람들은 다 덤벼도 된다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 같았지.


유정 : 자신의 생각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끼워 맞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곰브리치처럼 비판의 여지가 있는 글이 나는 더 좋아. 그 비판과 반박이 있어야 미술사도 철학도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중략)

지연 : (중략) 우리 유정이도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학도가 되면 좋겠어. 비판을 두려워한다거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네 생각을 펼치면 좋겠다.


이 두 사람은 모녀사이다. 모녀간의 이런 토론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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