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 Jan 22. 2022

서문부터 나를 시험한다. 발자크<나귀가죽>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스탕달 소설을 먼저 읽을까 발자크 소설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너무 어려워서 몇 장 읽다가 포기한 <나귀가죽>(문학동네,2009)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완독하면 <적과 흑>이 두 권짜리라도 부담없이 읽어내지 않을까 하는거죠. 


<나귀가죽> 서문, 번역한거 맞나요? 왜 못알아듣는 것이지요? 1831년 당시의 서문인데...전작 <결혼생리학>을 쓰고나서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나봐요, 작가와 소설을 분리시켜달라, 경험하지 않아도 작가는 리얼한 소설을 쓸 수 있다. 이런 요지의 서문인것 같은데...7장분량의 서문으로 벌써부터 저를 시험에 들게 하네요. 


오스틴의 <에마>에 대화가 가득했다면 <나귀가죽>은 묘사와 상징, 은유로 가득합니다. 지나가는 장소, 마주치는 행인 한사람까지도 영상처럼 묘사해버리겠다는 발자크의 리얼리즘이 저는 왜이렇게 장식처럼 느껴지던지요. 더군다나 프랑스혁명사에 대해서 모르면 절대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참에 1789년부터 1830년 7월혁명까지 제대로 훑기 시작합니다.(이제 서문읽었는데 말이죠...)


집에 있는 세계사책 세권 


<지도로 읽는 땅따먹기 세계사>는 컬러풀한 지도와 더불어 아주 쉽고 간략하면서 포인트를 다 짚어주네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는 곰브리치의 할아버지가 프랑스 혁명을 겪었기에 '프랑스혁명' 꼭지를 따로 분리해서 나폴레옹에 대해 상세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해줍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문학과 그림, 음악까지 고대부터 근대까지 역사와 함께 해온 예술작품을 다룹니다. <나귀가죽>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이고 발자크가 예술작품과 문학가까지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에 <곰브리치 미술사>보다는 이책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키피디아는 팩트체크를 위해 쓰는 것이 좋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려면 역시 이야기로 만나는 것이 가장 좋네요. 


그래서 제가 정리한 프랑스 혁명의 시대의 연도별 정치사입니다. 인쇄하실 분은 텍스트로 파일링해놓은 PDF파일 내려받으세요(노트이미지 하단참고)


1830년 7월혁명까지 잘 오셨다면 책이 술술 잘 읽힐것 같죠? <나귀 가죽>에는 '철학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으니 맘 단대이 먹고 라파엘의 마음속으로 몰입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해 귀족이었으나 7월혁명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털털이가 되어 방랑하는 젊은이인 라파엘이죠. 


라파엘은 좀있다 어두워지면 강물에 뛰어들어 죽자고 결심하고 시간떼우기로 들어선 골동품가게에서 '나귀가죽'을 손에 넣습니다. 골동품가게를 나와 우연히 들른 신문사 창립만찬회에서 파리 각계층의 정치 비평과  술주정을 발자크는 비중있게 다룹니다.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보나파르트파도 있을테구요, 과학자들도 대두되던 시기입니다. 언론사는 여론을 이때부터 입맛대로 쓰기 시작했나봐요. 


발자크가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페이지인데 왜이리 진부하게 들리는 거지? 분명히 작가는 이 파티장 대화에서 뭔가를 알려주고 싶었을 것인데 저는 <에마>1부 때만큼 감탄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자크와 스탕달의 소설을 만나기전에 읽어두면 좋은 <혁명의 시대>

이런식으로 대충 넘길거면 고전100권이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다른 선생님에게 추천받은 <혁명의 시대>를 읽기로 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집중적으로 다룬 에릭홉스봄의 명저입니다. 꽤 두꺼워서 다 읽진 못하고 1부 5장까지(산업, 혁명, 전쟁, 평화~p.232)읽기로 합니다. 당시 영국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의 폭풍이 몰아치고 당시의 인물들과 나폴레옹, 신분제도까지 에릭홉스봄의 설명을 들으니 해소가 많이 되었습니다. 다시 1부를 읽습니다. 


이번달 고전을 읽으면서 생긴 요령이 있다면 '1부의 터닝포인트'에요. 1부를 마칠때까지 인물들의 면면과 전개양상, 시대의식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으면 2부부터는 이 책이 내 시간을 잡아먹는 요물이 되버려요. 고역의 시간입니다.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는 포인트.


2부에서는 라파엘이 나귀가죽을 만나기 전, 자신의 과거를 친구에게 설명해주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부를 다시 읽었더니 라파엘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보이네요. 귀족출신이었으나 혁명과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함을 면치 못하고 사는 라파엘이 돈많은 백작부인이자 미망인인 페도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의 계급, 풍요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거겠죠.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사교비용과 구애작전을 펼치지만 페도라는 절대 넘어오지 않아요. 그러느라 밀린 집세도 못내는 판에 여관주인의 딸 '폴린'은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으로 라파엘을 도와줍니다. 


<나귀 가죽> 끝머리 해설에서(해설도 정말 끝내줍니다. 제 마음까지 꿰뚤어보는 좋은글이었어요>


<나귀가죽>을 손에 쥐기 전까지가 2부의 이야기였다면 3부부터는 '나귀가죽'이 전면등장합니다. 라파엘을 백만장사 상속인으로 만들어주고 그가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실현될때마다 가죽의 크기도 줄어들지요. 남아있는 가죽의 크기가 가죽주인의 수명. 발자크는 이런 장치를 이용해서 인간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독자에게 묻습니다.


욕망없는 인간이 쉽나요..ㅠ 욕망을 억제하면 존재할 수 있으나 욕망없는 삶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 욕망은 물론 화폐와 연결되구요. 그 과정에서 해결사를 자처하는 과학자, 의사들이 나오고 온갖 풍자와 통찰이 줄을 잇습니다.  


<나귀가죽>은 요약할수도 밑줄그은 책꼽문을 하나만 콕 찝을 수 없을만큼 너무나 방대한 성찰과 철학을 담고 있어서 읽다 말고 자주 멍해져서 창밖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끝머리에 역자가 쓴 해설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이겠지요. 격동의 역사를 겪은 시대와 인간, 화폐와 사랑까지 모든것을 아우르는 소설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내 문제들과 욕망, 감정의 뿌리를 파헤쳐보고자 할 때, 그것을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해도 상대에게 가 닿을수 있을까? 다른사람이 이해가능한 형태로(글이나 그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제 고민의 밑바닥에는 나를, 인간을,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문명사회를 더 잘알고 싶다는 생각이 깔려있었습니다. 발자크는 나의 그런 갈증을 단박에 해소해주더라구요.  


(p.464) "내가 문제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구성'해내지 못한다면 문제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문제만 보일 뿐 아직 진실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문제를 이야기로 형상화해내는 것이야말로 발자크에게는 진실에 다가서는 첫걸음, 아니 유일무이한 걸음이었다." -<나귀가족> 해설에서 


아마 발자크는 형상화해내고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자신의 나귀가죽을 쓰기로 한 것 같아요. 

그때보다 더 복잡해지고 불투명함속에 살고 있는 이시대. 발자크는 제 주머니속에서 줄어들고 있는 나귀가죽을 꺼내어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욕망하고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 항상 묻고 가죽의 존재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책을 덮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인오스틴 입담, 이래도 됩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