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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Feb 18. 2022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결혼하고 아이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연애했던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살때가 많습니다. 서로의 곁을 지켜주고 싶어서 가족이 되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면 자본적인 것이 개입하게 되고, 아이를 낳으면 사회적 관습에 따라 역할분담이 되면서 마음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죠.


제가 고전을 올해 읽기로 한것은 역사공부를 문학과 접목시켜서 좀 더 생동감있게 내 삶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싶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고 암기로 외운 역사는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200년전 프랑스혁명 300년전 과학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괴테가 나옵니다.


괴테가 살았던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계급은 괴테의 조국 독일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유럽의  종교전쟁이었던 30년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면서 영국, 프랑스는 계몽주의에 눈을 뜨지요.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유럽국가들의 왕과 귀족사이에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시민계급이 행정조직에 뿌리를 내리는 이득을 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시발지였던 독일에서는 '30년전쟁'의 패배로 나라가 피폐해지면서 영주와 귀족계급이 결탁하고 하급관리 를 제외한 모든 직책을 대귀족과 지주귀족이 독점합니다. 그 영향으로 시민계급의 유산이었던  예술, 문화가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프랑스 영국과 달리 독일예술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마술적인 비현실주의, 감정을 더 중시하는 비합리주의등을 표방하며 점점 내면으로 숨어들어가요.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계급격차와 현실문제를 회피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추구합니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권참조)


하지만 괴테의 1776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시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기점으로 주요유럽문학이 어우러져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사조가 하나로 모여 유럽문학 즉 '세계문학'으로 거듭나는 시점이 됩니다.

왼쪽 괴테의 초상화, 오른쪽 하인리리 빌헬름 <로마의 방 창가에 기댄 괴테>


지난 <걸리버여행기>에서 휘넘을 내세우며 '이성', '이성'을 외치는걸 보고 그래 이성적인게 좋긴 좋지...하지만 감각과 감정은? 이성과 도덕에 가둬둘수 있을까? 그 보편적인 인간애인 사랑을 그 시대에 도덕에만 맡겨둘 수 있을까 묻게 되었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다음 세대인 괴테가 1774년 펴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문학동네, 2010) 속 베르테르의 편지들을 읽고 답을 얻었습니다.


(p.114)
 "또한 그는 내 마음보다는 내 이성과 재능을 높히 평가한다네. 그러나 마음은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유일한 것으로, 모든 에너지와 모든 행복, 그리고 모든 불행의 원천이네  아,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이 마음은 나만의 것이라네"


이 소설은 실제로 이루지 못할 사랑때문에 권총자살을 한 젊은이 사건을 접하고 쓰여졌습니다. 작중 인물 베르테르는 젊은이 특유의 열정도 격한 감정에 휘둘리지만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자연예찬,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서간문을 통해 보여줍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간당시 삽화

고등학생때 읽어보고 몇 십년만에 다시 읽어보았다고 하신 고백클럽의 몇 분들이 전하는 말로는 다시금 전혀 새롭게 읽히는 책이었다고 해요. 그저 짝사랑하다 자살한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너머 괴테의 정신과 정열적인 자기 마음에 대한 탐구,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들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졌다고요.


(p.59) 빌헬름, 우리가 사랑 없는 세계에서 산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불 꺼진 환등기와 다를 바 없겠지! 작은 램프를 안으로 집어넣는 순간 하얀 벽에 다채로운 영상이 생겨나지! 설사 그것이 스쳐지나가는 환영에 불과하다 해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처럼 그 앞에 서서 그 신기한 현상에 넋을 잃는다면 그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할 수 있겠지.


고전은 그렇게 10년마다 새롭게 읽히고 스스로에게 새롭게 해석이 되기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사회적 인식과 소외되버린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모든 감정과 고뇌를 끌어안고 사라지는 길을 택합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무해한 일이라고 생각한거죠.


읽으면서 베르테르처럼 사랑한적이 단 한번도 없는 나 자신이 조금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랑을 만난다면 로테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을것 같지도 않고, 질투에 눈이 먼 머슴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더욱이 베르테르처럼 스스로에게 솔직하지도 못할 것 같아요.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건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은 괴테의 작품이 아닌 괴테 말년의 <파우스트>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도 꼭 읽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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