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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r 26. 2022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강철웅 역자가 옮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2020)

  지난해 소크라테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플라톤의 <향연>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향연>이  토론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변명에 가까운 변론이지요.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가 그리스국가들을 집어삼키면서(펠레폰네소스 전쟁) 아테네와 동맹했던 그리스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BC 399년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에 민주정이 다시 재건되지만 소크라테스는 감옥에 갇혀요. 그의 절친이었던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 동조했기에 평소 민주정을 비판하기도 하면서 자유로이 썰(?)을 풀고 다녔던 당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불똥이 튄 것이지요. 그 때의 재판을 다루고 소크라테스가 했던 연설을 플라톤의 언어로 내놓은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입니다.


강철웅 역자의 번역이 플라톤의 텍스트를 가장 잘 옮겼다는 조언을 듣고 수많은 번역 중에 2020년에 출간된 이책을 골랐습니다. 총 265쪽 분량인데 본문은 115페이지에서 끝납니다. 나머지 절반분량에 따로 뺀게 주석과 작품안내, 참고자료, 찾아보기입니다. 읽으면서 좋았던게 본문주석은 용어설명이고 뒷쪽 주석은 번역에 대한 주석이어서 어떤투로 번역했는지 원문은 어떤 느낌인지 직역인지 의역인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어서 중간중간 뒷쪽 주석도 보면서 읽었습니다.

해당책자의 뒷표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미움을 받게 됐고 고발을 당하게 됐는지 경위를 설명하며 자신의 지혜(?)를 증언하고, 모든 소문과 자신을 향한 미움들이 과연 정당한지, 지혜로운 자들이 벌인 일이 맞는지 검토하는 과정을 연단에 올라 이야기하지요. 그 내용인즉슨 사람들이 매우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자신이 찾아가 진짜 지혜로운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아니더라 였다는 겁니다. 뭐, 소크라테스는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산파법이라는 방식으로 논박하면서 상대방이 자기 말에 갇히게 되는 모순을 깨닫게 하는걸로 유명하니깐요. 이름난 정치인도 찾아가보고, 시인도 찾아가보고, 수공 기술자한테도 찾아가서 내린 결론이 소크라테스답습니다.


 (p.44)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롭다. 왜냐하면 우리 둘 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어떤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나는 내가 실제로 알지 못하니까 바로 그렇게 알지 못한다고 생각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적어도 이 사람보다는 바로 이 점에서 조금은 더 지혜로운 것 같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도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가 이러고 다니다보니 그 사람들한테 미움을 샀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헛소문이 돌게 되었다고 항변합니다.

번역을 잘 한 것인지, 플라톤이 글을 잘 쓴 것인지 이 책을 읽으니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확연히 들어오네요. 물론 플라톤의 해석이기에 크세노폰이 쓴 '변명'도 비교해가며 읽어보면 좋겠어요. 끝문장을 읽으며 느낀 건, 소크라테스도 중요하지만 플라톤의 글쓰기 능력에 엄지를 들었습니다. 첫 문장과 마지막문장을 연결시키면서 끝내놓으니 오... 여운이 남다릅니다. 이건 저도 꼭 써먹어봐야겠어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를 고발한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


강철웅 역자가 책 후반부 <작품안내>에 숙제를 내주더군요. 아테네시민들의 입장/플라톤의 입장/현재의 우리입장으로 비판적으로 읽어보라고요. 저도 독후감이라고 생각하며 정리해보았습니다.  


1. 아테네시민의 입장

전쟁을 끝낸 직후이기도 하고 도시 피폐해졌고 시민들의 심신은 날카롭고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을텐데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평화로운 시기에는  이런 비판 저런 비판이 신선했겠지만 27년동안 전쟁에 지쳐 있는데 젊은이들 찾아다니며 민주정이 어떻고 신이 어떻고, 돈같은 부속물보다는 덕을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 먹고 살기 팍팍한 시민들에겐 아니꼬울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그 연설을 듣고 있는 아테네시민이었다면 유죄를 내리기엔 과한 처사란 생각이 들어요. 사형선고는 최악의 처사라고 소리치고 싶겠지만, 그 대중들 틈에서 용기낼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2. 플라톤의 암묵적인 입장

저는 소크라테스의 연설에서 플라톤의 속마음이 얼핏 보이기도 했어요.  

(p.78)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하자면, 그야말로, 마치 크고 혈통 좋지만 큰 덩치 때문에 꽤 굼뜨고, 어떤 등에가 있어서 일깨워줄 필요가 있는 말(馬)과도 같은 국가에 신이 붙여 놓은 그런 사람 말입니다. 신은 나를 바로 그런 사람으로 국가에 붙여 놓은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빠짐없이 찾아가 붙어 앉아 여러분 각자를 일깨워 주고 설득하고 꾸짖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말입니다."


아테네 민주정에는 이런 사람이 꼭 필요하고 신이 붙여놓기(?)까지한 인물이 소크라테스라는...어찌 이런말을 소크라테스가 제입으로 했겠어요? 플라톤이 이 연설을 통해 철학자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3. 현재 우리들의 입장

현재 세계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도 진행중이고, 국내에서는 울진 산불과 코로나라는 재난, 결과를 알 수 없는 대통령 선거까지...복잡다단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이글을 쓸때는 대선 직전이었다) 자본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 더더욱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신의 덕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하는게 아닌가해요. 소크라테스는 벌금형은 돈이 없어 못내고 추방형은 그 나라가서도 목소리를 낼것인데 이런식이면 그나라에서 또 고발을 당하지 않겠느냐, 젊은이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게 자신의 역할이자 즐거움이라고 말하기때문에 당당하게 사형선고를 받아들입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p.101) "이건 신에게 불복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지낸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내가 말하면, 여러분은 내가 의뭉을 떤다고 생각해서 내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요. 또, 이번에는 내가, 날마다 덕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것들(즉 내가 그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는걸 여러분이 듣는 그런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런말을 하는 나를 훨씬 더 못 미더워할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실상은 내가 주장하는 대로예요. 다만 그걸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아테네 시민을 설득하는데 실패 했지만 저는 설득하셨어요! 아마도 이 책을 읽어본 현대인들은 설득당하리라 생각해요.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형에 처해지고 아테네의 민주정은 소크라테스 죽음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지식인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시대에 따라 그들이 어떻게 희생되는지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들도 많아지구요. 과연 2천5백년전 아테네의 민주정보다 우리는 진보했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정치적으로 나서기보다 한 개인개인과 대화하며 지금 눈앞에 단 한사람만이라도 개선시키고 싶어했던 소크라테스. 우리는 결국 내 앞의 한 사람만을 변화시킬수 있을 뿐이다라는 제 평소 철학과도 맞닿아 있어서 값지게 읽었네요.

덧. 몇 달전에 읽었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나랑 닮은 철학자' 찾는 테스트가 있었는데, 저는 '소크라테스'가 나왔던게 생각나네요. 그때는 뭔 말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ㅋㅋ 아래 링크있으니 여러분도 해보셔요.


http://socratest.across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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