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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스피디아 Jun 15. 2023

드디어 임신을 했지만, 한없이 조심스러운 마음

임신 4주 6일 차 일기

난임/임신 일기는 역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브런치가 제격이다. 그동안 비임신 결과가 뜨고 나는 다시 시험관을 했다. 그리고 배란일 맞추기, 인공수정, 시험관 신선 1차 실패, 동결 1차 계류유산으로 실패, 동결 2차 실패, 전원(병원을 바꿈)하여 동결 3차 실패, 그리고 이번이 동결 4차인데 드디어 성공했다. :)


이번 이식 후에도 임신테스트기(이하 임테기)는 하지 않았다. 시험관 이식을 한 사람들은 '임테기의 노예'라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보통 이식 후 피검사로 임신 결과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건 11일 후.


이식을 하고 이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든 사람들은 임테기에 손을 대게 된다. 얼리 임테기를 이용하면 미리부터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임신이 잘될수록 점점 진해지므로 그걸 매일매일 확인하며 일희일비하게 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매번 임테기를 당연히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고 실망하면 지금 해 오고 있는 힘든 과정을 흔들림 없이 계속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과정은 매일 아침 프롤루텍스 자가주사 한 방, 크리논겔 질정 넣기, 아침, 점심, 저녁으로 프로기노바 한 알씩 먹기, 저녁에 베이비 아스피린 한 알을 먹는다. 프롤루텍스가 꽤 아픈 주사로 유명하고, 또 아침 일찍 맞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매일 질정을 넣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렇게 임테기도 안 하고 버틴 11일 차가 되었다.


6월 9일 대망의 피검사 날. 병원에 다녀오고 결과를 기다렸다. 전화기를 '소리'로 바꿔두고 카톡 알람 하나하나에 긴장하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 간호사 분이 말씀하셨다.

"피검사 수치 1028입니다. 임신 수치입니다.
2차 피검사해야 하니 언제 괜찮으시겠어요?"    

얘기를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진짜요? 피검사 수치 1028이요?" 당시 약이 다 떨어져서 3일 후인 6월 12일로 예약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의 감정이라니. 피검사 수치가 100 정도가 넘으면 안정권인데 1000대라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해냈다는 마음. 피검사 결과를 위해 일찍 퇴근해 있던 남편, 엄마와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친구에게 벅찬 감정으로 말을 했다. '드디어 1차 관문을 통과했구나.' 정말로 행복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더블링이라는 번째 관문이 있었기 때문. 더블링이란 임신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 매일매일 수치가 두 배씩 올라가는 것이다. 당연히 바라던 임신이라는 결과에 너무너무 감사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함과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더블링을 통과하지 못하면 화학적 유산이라는 증상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화학적 유산이란 임신 피검사 수치에 도달한 이후 수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임신 유지에 실패하고 유산할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이다.


조마조마하며 6월 12일 병원에 다녀온 후 또 심장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렸다. 다행히 두 번째 피검사 수치는 4098. 순조롭게 더블링이 되고 있는 수치였다. 또 한 번 안심하고, 이번에는 초음파 날짜를 잡았다. 초음파 날짜는 다음 주 수요일인 6월 21일. 이번에는 아기집이 무사히 보일까 걱정이다. 피검사 수치가 높은데 아기집이 보이지 않을 경우 자궁 외 임신이라는 결과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 이 경우 또 다른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식 후 나는 아이가 안전하게 착상에 성공하도록 최대한 돌아다니지 않았다.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먹고 집콕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임신이 되고서도 똑같다. 아니, 이식 때보다도 훨씬 더 조심하고 돌아다니지 않고 약을 챙겨 먹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전에 한 번 8주 차에 계류유산을 했던 터라 마냥 호들갑을 떨 수도, 좋아할 수도, 사람들에게 오픈할 수도 없다. 작년에 첫 임신했을 때는 남산 하얏트 호텔로 난생처음 호캉스도 가고, 일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유산하고 난 후에 나는 그 행동들을 뼈저리게 후회했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유산의 원인이 '염색체 이상', 즉 내가 어떻게 행동해서 발생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유산하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로 마음이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었다.


다 보니 다음 주 수요일인 6월 21일까지 나는 또 함부로 기대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저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뿐.

'자연임신이 된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시기에 잘 모르고 외국여행도 가고, 맥주도 마셨다는데.
그래도 아무 일 없었다는데. 나만 왜 그러면 안 되지?'
 

그런 못된 마음이 들었었다. 참 사람 마음이란 간사하다. 임신만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막상 기다리던 임신이 되니까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걸 억울해한다. 감사한 마음만 가득해야 하는데 나의 욕심이란 어쩜 이렇게 끝이 없는지. ㅎㅎ 그러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반성하고 또 욕심을 버리고 그래야지.


이번에는 임신한 걸 오픈한 사람도 턱없이 적다. 일전에 꽤 많은 사람들에게 오픈을 했다가 유산을 하고 나서 정말 후회를 많이 했기 때문.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더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게 하고 싶지만, 일단 안정기인 8주, 12주까지는 한없이 조심하게 된다.


그래도 못 기다릴 것 뭐 있겠는가. 재작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년 반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왔던 임신인데. 한두 달 정도 남한테 늦게 오픈한다고 해서, 해외여행 못 가고 집콕하면서 또 유산이 될까 봐 조심한다고 해서 억울해하지 말자. 그저 지금의 이 상황을 감사하게 여기고,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고, 이렇게 떠들고 싶을 땐 브런치에 일기를 남기면서, 한두 달만 귀하고 조용하게, 그렇게 아기를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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