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할머니는 70살을 훌쩍 넘긴 연세셔서 남은 여생이 아주 많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남은 시간이 못내 지겨우셨는지 수면제를 한 움큼 쥐어 드셨다.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밀려들어 왔다. 진단명 T14. 91, suicide attempt.
다행히, 할머니의 몸은 생각보다 건강해서 그 수면제를 다 받아냈다. 덧붙이자면 수면제의 치사량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이 필요하고, 또 잠처럼 편하게 죽을 것 같지만 무척 괴롭다.
여튼 그리하여 긴 꿀잠을 취하고 난 할머니는 부산하고 어수선한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뭐여, 나 죽은거여?"
"아뇨. 할머니, 여기 병원이에요. 정신이 드셨어요?"
할머니는 잠이 덜 깨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시간이 좀 지나고 자기가 결국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괜히 민망하단 생각이 드셨는지 얼른 퇴원시켜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다 일어나서도 바로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구나.라고 담당 간호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도 그저 숙면에서 깨어나 저렇게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사람을 더는 잡아둘 이유가 없었으므로 자의 퇴원서를 출력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너무 비협조적이고 소란스러워 다른 환자들의 치료에 명백하게 방해가 되고 있었다. 출력하는 도중에 처음에 나간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심장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극적으로 담당의는 결국 그녀가 병원에 남아야 할 의미를 찾아냈고 다행히도 보호자들이 시술을 원했던 덕분에 그녀에게 곧바로 적절한(?) 처치가 행해졌다.
결국 죽고 싶었던 그녀는 '진짜 죽을 수도 있던' 꽉 막힌 심장혈관을 두 개나 뚫고 나서 중환자실로 오셨다.
죽으려고 약을 있는 대로 먹고 눈을 떠보니 더 건강한 몸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그 이후에도 우울함과 수치스러움에 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소란을 피워댄 탓에 그녀는 결국 사지를 결박당한 채 수액을 맞으며 침대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녀가 입실하고 정확히 18시간 후, 아무것도 안먹겠다며 죽겠다 죽겠다 하시던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여태 미뤄두었던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식사를 한 상에다 차려놓은 채 닥치는 대로 집어드셨다.
마치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걸 일단 입에 넣는 본능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아. 할머니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살고 싶으신 게 분명했다.
늦은 저녁의 중환자실, 뷔페처럼 차려진 한 상, 또 그걸 쉬지 않고 손으로 집어 드시는 할머니. 이 행복한 광경을 모든 의료진들은 금세 하나둘씩 모여 구경하고 응원했다. 숨은 삶에 대한 열망이 묻은 역동적인 식사를,
할머니는 이 식사 이후로 분명 한 번 더 건강해질 것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