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회사도 사내정치가 한국만큼 있을까?

1.2 전략적 예측의 미시적 적용

by 마찌

목차

1 전략적예측

1.1 거시적 전략 포지션 예측

1.2 미시적 전략예측


1. 딜레마: 능력인가, 내 사람인가?


"이번 달에 진급한 거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제 자네가 팀 맡아서 한번 제대로 꾸려봐야지?"


리더십 진급이라는 기쁨도 잠시,

당신 앞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가 떨어집니다.

바로 새로운 팀장(중간 관리자)을

누구로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에는 두 명의 후보가 떠오릅니다.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동안 나를 믿고 잘 따라준 A 차장,

그리고 업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전적으로 내 편이라기보다는

중립적인 B 차장.


당신이라면 누구를 발탁하시겠습니까?


당장의 전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B 차장이 끌립니다.

내 식구를 챙기다가는

'라인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성과가 떨어질까 걱정도 되죠.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전략적 예측(Strategic Foresight)'을 가동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읽은

<삼국지>를 직장 생활에 대입해 보곤 합니다.

삼국지의 목표가 천하통일이라면,

사내 정치의 목적은 조직 장악과 목표 달성입니다.

영토가 넓어질수록(직급이 오를수록)

내가 직접 모든 곳을 다스릴 수 없기에,

그 지역을 믿고 맡길 '내 사람'이 필요해집니다.

이것은 미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냉정한 계산이 들어갑니다.

군사적, 재정적 산출 목표가 100인 팀이 있다고 칩시다.

내가 임명한 A 팀장이 부족해서

85만큼의 성과만 낸다면

15만큼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능력 뛰어난 B 팀장이

결정적인 순간에

경쟁 세력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해 봉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값은 '0'이 아닙니다.

내가 일군 영토를 고스란히 들고

적진으로 넘어가기에 결과는 '-100'이 됩니다.

리스크 대비 성과로 보자면,

내가 임명하는 팀장의 1순위 덕목은

'능력' 이전에 '신뢰도'가 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줄이는 것,

이것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략적 예측의 첫걸음입니다.


2. 업무 적용: 협상 테이블의 승부수


이 거창해 보이는

'전략적 예측'이 비단 인사 문제에만 적용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회의, 보고,

그리고 치열한 협상 테이블 위에서도

'상대의 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것만으로

승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장 몇 주 전의 일입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협력사에서 가격 모델(견적서)을 보내왔습니다.

엑셀 파일을 열어보고 저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우리 팀이 내부적으로 추산한 가격보다

무려 20% 이상 높았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10% 내외의 오차는

조정 가능하지만,

20%는 너무 큽니다.

아마도 협력사는

향후 몇 년간의 영업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초반에 높은 가격을 부르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사용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속셈인 듯했습니다.


팀원들은 분주해졌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실무자들은

[Standard 가격 비교표]를 준비합니다.


"우리 팀 추산 인건비는 $20인데,

협력사는 $45를 책정했습니다.

우리는 100명이면 된다고 보는데,

협력사는 200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자료를 들고 회의에 들어가면 필패(必敗)입니다.

각자의 세부 항목에 깔린

'숨은 가정(Hidden Assumption)'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200명이나 필요하냐"고 공격하지만,

협력사는 "당신들이 현장 상황을 몰라서 그렇다.

안전 규정 때문에 200명은 필수다"라고 방어합니다.

논리 대 논리의 싸움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립니다.


저는 접근 방식을 바꿨습니다.

'우리가 공격하면 그들은 방어 논리를 댈 것이다'라는

반응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방어할 수 없는,

아니 방어해서는 안 되는 무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이 과거에 제출했던 견적서'였습니다.


3. 자가당착의 덫 (Checkmate)


회의 당일,

저는 화면에 우리 팀원들이

준비한 회심의 자료를 띄웠습니다.

통상적인 '우리 추산 vs 협력사 견적' 표가 아니었습니다.


[협력사의 과거 프로젝트 기준 vs 이번 견적 비교표]였습니다.

"상무님, 이번 가격 검토에서는

저희 팀의 추산치는 모두 배제했습니다.

대신,

지난번 프로젝트 때 귀사가

'반드시 이 정도는 필요하다'며 피를 토하며

주장하셨던 그 기준들(시간당 임금, 투입 인원 비율 등)을

그대로 대입해 봤습니다."


화면 속의 표는 명확했습니다.


화면 캡처 2025-12-16 151731.png <Standard포맷대비 이번 회의 전략 개념 예시>


"그런데 이번 견적은

귀사가 지난번에 주장했던

그 기준보다도 훨씬 높더군요.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귀사의 임금 체계가 50%나 폭등했거나,

작업 효율이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진 건가요?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순간 회의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습니다.

협력사는 완벽한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습니다.

이번 견적이 맞다고 우기려면,

지난번 프로젝트 때

본인들이 냈던 견적과 논리가

엉터리였다고 자백해야 하는 꼴이 되었으니까요.


"지난번 논리가 틀린 게 아니라면,

이번 견적은 수정이 좀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결국 협력사는

제대로 된 반박 한 번 못 해보고,

모든 리더십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가격모델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겨 원하는 가격을 얻어냈습니다.


4. 전략은 선택이 아닌 '생존 본능'이다


많은 사람이 '전략적 예측'이라고 하면

넥타이를 맨 임원들이나

전쟁터의 장군들이 하는

거창한 미래 예측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고도의 전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셰프는 무작정 맛있는 음식을

순서 없이 내놓지 않습니다.

첫 입맛을 돋우는

가벼운 에피타이저부터 시작해,

서서히 미각을 끌어올려

메인 요리에서 클라이막스를 터뜨리고,

깔끔한 디저트로 마무리합니다.

맛의 강약과 순서를

치밀하게 계산한 '설계의 전략'입니다.


몸을 부딪치는 본능의 영역인

UFC 격투기는 또 어떤가요?

피 튀기는 난타전 같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수싸움이 있습니다.

선수는 상대의 큰 주먹(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페이크 모션'을 씁니다.

무의식적인 반사 신경을 이용해

상대를 내가 원하는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이죠.

옥타곤 위에서 전략이 없는 선수는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앞서 제가 협상 테이블에서

사용한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의 뻔한 방어 논리(가드)를 뚫기 위해,

그들이 방심하고 있는 과거 데이터(빈틈)를 찌른 것입니다.

내가 A라고 말하면

상대가 B라고 나올 것을 미리 계산하고,

아예 B라는 말이 나올 수 없게끔 판을 짜는 것.


이처럼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회사에서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한

'옵션'이 아닙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내 성과를 지키고,

휩쓸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기술'입니다.


전략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고요?

격투기 선수가 상대의 게임 플랜에 말려들어 KO 되듯,

당신은 누군가가 짜놓은 전략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 02화열심히 일하는 게 왜 커리어를 망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