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답장을 가장 빨리 하는 사람이 가장 일못러

Chapter 2.2 몰입

by 마찌

이메일 제목에

[긴급], [회신요망]과 같은

머리말이 붙어 있으면

무시하기가 힘듭니다.

‘뭐지?’ 싶어서 열어보면

단순히 참조(CC)로 들어간,

제가 굳이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건이 태반입니다.

정말 급한 일이라면

메신저나 전화가 올 것을 알면서도,

업무 중 이런 이메일 알람은 수도 없이 날아옵니다.


특히 관장하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면

사방에서 연락이 쏟아집니다.

업무가 쌓이는 게 싫어서

'읽고, 회신하고, 읽고, 회신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됩니다.

퇴근길에 "오늘 나 대체 뭐 했지?"라는

자괴감이 들지만,

이메일 회신도 업무의 일종이니

묘하게 죄책감은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성취감도 없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 '가짜 노동'에 하루를 바친 셈이니까요.


내세울 만한 진짜 성과는

대부분 '몰입'에서 나왔습니다.

집중해서 문제를 파고들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말입니다.

근육이 자라려면

고통과 미세 파열을 감내해야 하듯,

성과 역시

몰입이라는 고통스러운 에너지를 먹고 자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챌까요?


이번 연휴 전의 일입니다.

오전 10시쯤부터 한창 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자꾸 베배 꼬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이러지?' 하고

무시한 채 30분쯤 더 집중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습니다.

"아, 잠깐만 쉬자" 하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일어선 순간,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화장실 용무가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엉덩이와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뛰다시피 달려가야 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몰입 상태를 깨지 않으려다 보니,

뇌가 보내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 신호조차 감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뇌가 깊은 몰입(Deep Focus) 상태에 들어가면,

전두엽은 처리 능력을

100% 활용하기 위해

식욕, 배설 욕구 같은 신체 감각 신호들을

'음소거(Mute)' 모드로 바꿔버립니다.

이를 뇌과학에서는 '감각 차단(Sensory Gating)' 또는

'일시적 전두엽 기능 저하(Transient Hypofrontality)'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거나,

누가 이름을 불러도 못 듣거나,

누군가 말을 걸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모두 이 때문입니다.

뇌가 이미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

외부 자극 처리에 쓸 에너지를 아끼려는

필사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초인적인 몰입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험상 두세 시간 정도 깊게 몰입하고 나면,

마치 골수에 있는 에너지까지

싹 긁어 쓴 듯한 극심한 체력 고갈을 느낍니다.

처음엔 제 체력이 약해서인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Sapolsky)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경기에 깊게 몰입할 때

소모하는 에너지는

하루 6,000칼로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마라톤 선수가

풀코스를 뛸 때 소모하는 에너지와 맞먹습니다.

단순히 머리를 써서가 아니라,

뇌가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심장 박동을 높이고

근육을 긴장시키는 등 신체를 '전투 상태'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Code_Generated_Image.png <깊은 몰입 시 전전두엽 포도당 소모와 마라톤 시 근육 글리코겐 소모 비교. 두 경우 모두 약 2시간(120분) 시점에 임계치에 도달함을 보여준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깊은 몰입 시 뇌의 연료(포도당) 소모 패턴은

마라톤을 뛸 때의

근육 연료 소모 패턴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약 2시간이 지나면 '연료 고갈'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 정도의 에너지 소모와

정신적 피로 상태에서는

억지로 다시 앉아 있어 봤자 '가짜 집중'만 될 뿐입니다.

경험상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회복 방법은 다음 두 가지였습니다.


방법 1: 파워냅 (Power Nap)


20분 이내의 짧은 수면입니다.

뇌의 스위치를 잠시 껐다가

다시 켜는 것만으로도 빠른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팁이 있다면,

따뜻한 담요나 전열 기구를 이용해 체온을 높여주면

더 빨리 잠들 수 있고 충전 효율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의 '브레이너 제이' 채널에 있는 숙면 여행

낮잠 가이드를 즐겨 듣습니다(광고는 아닙니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y9icl7T0Qs?si=GYCJ4jUnhFtwf7OB)


방법 2: 산책 (Active Recovery)


저는 원래 산책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운동이라기엔 강도가 너무 낮고

시간만 잡아먹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차라리 Gym에 가서 땀을 흘리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 시절,

집에만 있는 아이를 위해 점심시간마다

유모차를 끌고 30분씩 동네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걷는 동안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오전 내내 책상 앞에서 풀리지 않던

복잡한 문제들이 스르륵 정리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육아를 위해 시작한 산책이

업무 성과의 핵심 비결이 된 셈입니다.

실제로 혁신을 강조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사옥 내에

산책로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앉아 있을 때보다 걸을 때

창의력이 평균 60% 향상된다고 합니다.

산책은 '휴식'이 아니라 뇌를 씻어내고

다시 채우는 '가장 생산적인 업무 활동'이었던 것입니다.


충분한 회복을 마쳤다면,

이제 다시 사자의 목덜미를 물러 갈 시간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렇게 확보한 몰입력으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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