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ohsiung, Life Coffee Studio
무척이나 아쉽게도 이 여행에서 방문했던 대만의 마지막 카페였다. 이곳 역시 메이선 카페의 바리스타에게 추천받았는데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아주 독특하고 훌륭한 커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카페가 매우 작기 때문에 매장 안에서 커피를 마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라이프 커피 스튜디오는 가오슝의 중심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에 있다. 이 카페를 추천해준 바리스타의 말대로 카페가 정말 작았는데 프라하에서 방문했던 원십커피 정도 되는 매장 크기였다. 전부 다 해서 세명이나 네 명 정도 앉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밖에서 들여다보니 다행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서 얼른 사진을 찍고 들어갔다.
대충 들여다본 것 그대로 카페는 정말 작았고 그 공간을 여자 바리스타 혼자 지키고 있었다. 작업공간을 구상할 때부터 혼자서 일하기에 알맞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좁은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요량이었는지 대부분의 기계와 추출 기구들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낮게 배치해두었다. 만약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그라인더, 핸드드립 기구 등이 한눈에 다 보였다면 시선이 마구잡이로 분산되어 답답하게 느꼈을 것이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바의 왼쪽 편에서 주문을 할 수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손님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앉아있는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메뉴판을 읽고 주문하려 했다. 바리스타는 그런 의도를 눈치챘는지 비슷하게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아주었다. 그럼에도 그 바리스타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원두를 추천해주었고 그 원두로 주문을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셔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출입구 바로 옆의 전면 유리창에서 내 허리쯤 오는 부분부터 한 뼘 길이로 철망처럼 되어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저 유리를 보호하는(?) 구조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주문을 받은 후에 바리스타가 바에서 쓱 나와서 그것을 위로 올리고 아래쪽을 고정하니 그 구조물이 바로 테이블로 변했다. 그리고 옆에 세워둔 접이식 철제의자까지 펼쳐놓으니 완벽한 테이블과 의자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커피는 금방 나왔다. 작은 나무쟁반 위로 내 취향에 딱 맞는 투박한 도자기잔과 갓 추출된 따뜻한 커피가 담긴 유리 서버가 함께 올려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선호에 맞게 조금씩 따라서 마시라는 배려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씨만큼 커피도 정말 맛있었다. 딸기와 블루베리 같은 단맛과 향이 압도적이었고 끝으로 갈수록 산뜻한 꽃의 향미가 느껴졌다. 심지어 아주 깨끗했다.
작은 습관
음식과 커피가 만드는 사람에 따라간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는가? 카페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커피를 사용하더라도 누군가는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누군가는 묵직한 느낌으로 만들어낸다. 나는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의 커피를 훨씬 더 선호하지만 내가 만드는 커피는 늘 남들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 난다. 묵직한 단맛과 질감에 산뜻한 향미와 산미가 묻히는 정도이다. 반면 누군가는 그런 묵직한 단맛을 선호하지만 늘 가볍고 산뜻한 느낌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여러분은 그런 차이가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내용이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을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각자가 만들어내는 커피의 느낌이 다른 것은 각자의 작은 습관들이 모인 결과물일 테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탬핑을 할 때 남들보다 미세하게 힘을 더 준다던지, 핸드드립을 할 때 남들보다 조금 더 느리게 주전자를 돌린다던지 하는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느낌의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 그런 작은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해봤지만 사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참 고치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굳이 꼭 고쳐야만 하나? 그렇게 하는 데엔 나름 이유가 있는데 말이지'
생각해보면 내가 커피를 만들 때 하는 작은 습관들은 경험에 의해 쌓아 온 결과물로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탬핑할 때 힘을 미세하게 덜 주면 조금 더 산뜻하게 커피를 추출할 수는 있지만 커피 퍽이 강한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싱거운 느낌의 커피가 나오게 되고 그것이 아메리카노나 라떼에 들어갔을 땐 음료를 아주 밍밍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습관들이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러한 습관에는 늘 이유가 있다. 만일 그 이유가 합리적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 반면, 지금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소한 습관을 피드백해보고 거기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충분히 고칠 이유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케줄상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다른 카페를 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카페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잔을 비우고난 후에 다른 손님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했다. 정말 맛있는 커피를 선사해준 바리스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에서 걸어 나왔다.
이것으로 <커피따라 세계일주 - 대만편>도 드디어 끝이 났다. 후련하면서 동시에 너무 아쉽기도 하다. 실은 찍어둔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때 마셨던 음료와 공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글로 쓰지 못한 카페가 몇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다니면서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고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었다면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정말 크다.
작년 3월부터 약 한 달 가까이 준비 기간을 걸쳐서 작가 신청을 했다. 당연하게도 첫 시도는 처참한 실패였다. 이제까지 논문이나 과제, 친구에게 쓰는 편지 외에는 공들여서 글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딱딱하거나 개인적이었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아가며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서 도전했고 두 번째 시도 끝에 작가 승인이 났다. 결국 4월 27일에 첫 번째 글을 업로드했다.
처음부터 큰 목표는 없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봐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신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페이스북의 유명한 페이지의 편집자분께서 연락을 주셔서 일주일에 한 번씩 페이스북에 내 글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가끔씩 글이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걸리는 날에는 하루 방문자가 2,000명 가까이 되기도 했고, 어느새 구독자는 200명이 넘었다. 그런 작은 성과에 점점 욕심이 났고 브런치 출판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커피따라 세계일주 - 유럽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검토했는지 모른다.
조금은 지겨운 과정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커피따라 세계일주 - 대만편>을 묶어볼 생각이다. 역시나 계속되는 반복 작업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역시 환영하는 바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 앞 편의점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하는 요즘, 커피따라 세계여행을 다시 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길고 긴 여행의 공백 뒤에는 어떤 곳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