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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Jan 10. 2022

오늘도 출근, 카페의 하루

하루 동안 카페 안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픈 전 새벽시간 7:00 AM>


"하암- 자 기상! 기상! 다들 간밤에 별일 없었지?"


아직은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 가장 먼저 눈을 뜬 에스프레소 머신이 주위 기계들을 깨웠다.  


"아이고 삭신이야. 머신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요즘엔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네요. 바리스타라고 하는 인간들이 매일매일 원두를 얼마나 갈아대는지."


에스프레소 머신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그라인더도 아침 인사를 했다.


"그라인더 형님,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저는 요즘 숨 좀 쉽니다.. 겨울이라 쉐이크가 많이 안 나가서 다행이에요"


우는 소리를 하는 그라인더에게 블렌더(믹서기)가 위로를 건넸다.


"흥. 힘들다는 이야기 좀 하지 말아요! 우리를 사용하는 바리스타님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매일매일 우리를 깨끗하게 닦아주기도 하잖아요? 안 그래도 요즘 핸드드립 커피가 많이 들어와서 바리스타님들이 저를 들고 돌리느라 어깨가 남아나질 않아요. 불평 좀 그만해요."


"아주 배려 넘치는 주전자님 납셨구먼? 매일매일 커피가 담긴 포터 필터에 쿵쿵 부딪히고, 얼굴에 커피랑 우유 방울이 튀어대는 내 심정을 알아? 그라인더 얘랑 나는 아주 죽을 지경이야. 너는 애지중지 여유 있게 다뤄지니 그런 말이 나오지.."


주전자의 말에 발끈하여 에스프레소 머신이 말했다.


"아이고 형님 그냥 두세요. 저 아가씨는 아직 어리잖아요. 그리고 핸드드립은 천천히 해도 지갑에서 네모난 것을 꺼내서 긁어대는 인간들이 잘 기다리잖아요..  아메리카노나 라테 한 잔은 뒤돌아서면 재촉해대니.. 바리스타들도 어쩔 수 없지요."


그라인더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위로하지만 역시나 그도 주전자가 얄밉기는 마찬가지이다.


반면, 바리스타의 느릿느릿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익숙한 주전자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의 말을 듣고도 그들의 불편들이 여전히 마음에 드지 않는 모양새다. 안 그래도 튀어나온 주둥이가 더 튀어나온 것 같다.  


"흥, 자기들만 열심히 일하는 줄 알지... 감사한 줄을 모른다니까 정말."




<오픈 근무자 출근시간 7:30 AM>


"자- 이제 준비해볼까?"


일반 직장인들의 출근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온 오픈 바리스타가 카페의 모든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다음, 돈통을 열어 전날의 시재를 확인했다.


"만 원짜리 열 장... 오천 원짜리 열 장... 천 원짜리 스무 장.. 오백 원짜리.. 백 원짜리... 오케이 맞네."


사장에게 시재를 보고한 바리스타는 본격적으로 카페 오픈 준비를 시작다. 전날에 씻고 닦아놓은 기물들을 제자리에 놓고, 그라인더 호퍼에 원두를 채우고, 씻기 위해 분해했던 에스프레소 머신을 조립해서 사용할 준비를 끝마다.


보통 부족한 시럽이나 재료의 재고 등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아침시간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빨리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커피를 먼저 확인해보기로 결정다.


"자, 그럼 먼저 에스프레소 한 잔 마셔볼까? 왠지 모르게 아침에 세팅하면서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단 말이지.."


"흠- 완벽하구먼 역시 지금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어. 오늘은 혼자 있을 때 손님 좀 많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아"


평소보다 빠르게 커피를 확인한 바리스타는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끝마치고 [Close]로 되어있던 팻말을 [Open]으로 뒤집어 놓다. 그와 동시에 물밀듯 밀려드는 직장인들. 쓴웃음을 지은 바리스타는 작게 한 숨을 쉬지만, 금세 밝은 표정과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다.


"어서 오세요!"



<마감 근무자 출근 시간 1:00 PM>


"아이고 우리 오픈 바리스타는 매일 점심 식사가 늦네요 머신 형님."


그라인더가 오픈 근무 바리스타가 1시 반이나 되어서야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마감 바리스타 놈은 매일 출근을 딱 맞춰서 하니.. 조금 일찍 와서 도와주면 덧 난대냐? 그리고 이놈은 나를 다루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이리저리 쿵쿵 부딪혀대고 얼굴에 묻은 우유도 바로바로 닦지 않는단 말이다."


직장인들의 점심 러시가 끝나는 시간에 출근한 마감 바리스타를 맞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포함한 다른 기계들 대부분은 그를 딱히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말도 마십시오 형님들.. 저 바리스타 놈은 쉐이크를 만들고 나서 저를 바로바로 씻지도 않고 한참을 방치해두는 게 일상 입지요. 제 몸에서 나는 우유냄새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하아..."


평소 불평을 잘 늘어놓지 않았던 블렌더 또한 울상을 지었다.


"흥, 이 시간에는 여유롭게 핸드드립 커피를 먹는 머리 긴 인간들이 많잖아요. 이해 좀 하세요! 바리스타님 어깨는 얼마나 아프겠어요? 당신들이 알기나 해요? 우. 아. 하. 게 기다리라고요 아저씨들."


"저놈의 주둥이를 언젠간 내가..."


인간의 편에서 오히려 기계들을 무시하는 듯한 주전자의 발언에 화가 난 에스프레소 머신은 열기를 뿜어댔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이 밀려들어, 말할 틈도 없이 집중력을 발휘해 커피를 추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물의 온도가 떨어져서 커피 맛이 변할 수 있다. 많은 물을 써야 할 때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집중력이 중요하다.


"아이고- 오픈 바리스타가 결국 밥 먹다가 도와주러 나왔구나. 쟤는 정말 착한데 불쌍해."


그 와중에 밥을 먹다가 뛰쳐나온 인간을 본 에스프레소 머신이 말했다.


"인간들의 사정인걸요 형님. 저는 날 온도가 뜨거워져서 커피를 갈 때 향과 맛이 변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하니, 잠시 생각 좀 비우렵니다."


약간의 동정을 느꼈던 에스프레소 머신도 생각을 비운다는 그라인더의 말에 동의하며 다시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흥, 웃겨 저 기계들 참. 나처럼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기능을 타고났어야지 호호."



<마감 전 시간 8:00 PM>

"하 이제야 좀 살만하네.. 요즘 사람들 코로나인데도 커피 마시러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9시 제한이 생겼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밤늦게까지 개고생이지 뭐람.."


왠지 모르게 불평과 불만이 많은 마감 바리스타이다. 그는 주문 마감시간인 8시 30분까지 제발 손님들이 더 오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다. 그와 동시에 1분이라도 더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 벌써부터 남은 시럽과 재료를 빠르게 채웠다.


"흠.. 그래도 주문 마감 전까지는 기물은 씻지도 못하니까 재료나 채우자. 제발 제발 더 오지 마라."


역시 직원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 걸까? 빨리 퇴근해서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은 마감 바리스타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손님이 더 오지 않기를 빌었다.


불평과 불만이 많기는 하지만 일처리만큼은 확실한 마감 바리스타는 선입 선출을 확실하게 지켜가며 깔끔하고 정확하게 재료를 채웠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일하다 보니 어느새 8시 30분이 지나고 있었고 마지막 손님들도 슬슬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유난히 힘찬 목소리로 마지막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넨 바리스타는 재빠르게 [Open] 팻말을 [Close]로 돌려놓은 뒤 간판 불을 껐다. 바 구석구석과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고 난 다음, 그라인더 호퍼에서 원두를 꺼내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분해하여 청소를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세제를 넣고 세정 기능을 돌려놓고, 그라인더를 청소했던 청소기로 매장 청소를 시작했을 때였다.


"아휴, 이건 또 뭐야. 누가 이래 놓고 갔어? 바닥에 이렇게나 흘렸으면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니야!! 다들 매너는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아휴. 화장실도... 하아... 휴지 좀 많이 넣고 물 내리지 말라니까 죽어도 안 듣지. 다들 글을 읽을 줄은 아는 건가??"


바리스타 본인이 항상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바와 다르게, 손님 테이블과 화장실은 늘 예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분노에 가득 찬 바리스타는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도 최대한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이래저래 모든 청소를 끝마친 바리스타는 포스(POS) 기계로 가서 오늘 들어온 수입과 판매 내역을 확인하고 다음날 오픈 시재를 맞춰놓은 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다 끝났습니다. 오늘은 매출이 좋네요. 오늘 매출 내역이랑 시재를 제외한 현금은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드리겠습니다. 네네. 아니요 하하 고생은요.. 손님이 많아야 저희도 신나죠!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바리스타는 외투를 걸치고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듬뿍 바르며 전체적으로 잊어버린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장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나왔다.


"오늘도 끝났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조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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