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

by 매너티연


나는 벌레를 참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여전히 가까이 하긴 부담스러운 존재긴 하지만 조금은 달라졌다.

최근 벌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내 눈앞을 방해하는 초파리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커피잔안에 들어가 출처를 모르는 초파리가 가진 세균이 내 커피에 들어갈까 봐 부지런히 내쫓았다. 근데 더 이상 손을 휘저으며 그들이 떠나길 바라지 않는다. 샤워를 할 때 신경 쓰이는 실거미도 더 이상 나를 요동치게 하지 않는다.


나를 믿는다는 것 험난한 세상에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믿는다. 알 수 없는 믿음이 나를 충만케 한다. 종교가 있거나, 믿을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한없이 약한 인간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더욱 세상의 파도에 휩쓸릴 예정이지만, 이제 그게 두렵지 않다.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의미를 이제 깨달았다. 앞으로도 삶이라는 파도에 휩쓸릴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는다. 내가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안에서 흔들리는 미역, 플랑크톤, 해양생물, 바닷속 떠있는 부유물 살아있는 모든 것이다.

흔들려서 위아래로, 정신 사납게 나를 어지럽힐걸 알지만 어느새 고요한 순간 또한 찾아온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싫어하는 인간들이 망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들이 나를 존중해야 할 필요도 더불어 그들 또한 타인의 얽매임에 고통스러워한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이젠 그들을 내 안에서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토록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거기서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 허망함과 상실감 등의 모순된 감정이 오간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감정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 이 감정마저도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것에 양가감정이 든다. 그 감정이 나의 일부분이었기에 이토록 공허하겠지. 나를 가득 채웠던 증오의 요소마저도 나를 채워줬기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자유로워 기쁘고 동시에 공허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이 내 삶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에 허망하다. 슬프다.


이제 진정한 삶을 살도록 허락된 이 시간이 낯설다. 부모의 감정이란 것이 이런 느낌일까. 소중한 자식들을 정서적으로 독립시키고 하나의 개인으로 인정해 주고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감정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책임지려 했던 생각도, 두려움 가득한 내 감정에 휘둘리는 삶을 떠나보내는 것이, 오랜 시간 키워왔던 자식을 나를 지켜줬던 부모로부터 떠나는 그 느낌인가 싶다.


타인과 의존된 삶을 살았다. 타인의 의존으로부터 독립된 사람이 된다.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 내 삶에서 더 이상 타인은 없다.


나를 내려놓는 일의 마지막은 허무하고 아프다.



__매너티연


사진: UnsplashAluminum Disemboweler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