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곳은 고등학교다.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은 외면받고, 의미없는 경쟁만 했던 곳,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계속 앉아서 책만 봐야 했던 곳,
과민성 대장증후군이었던 나에게 지옥이었던 곳
성적이 좋아야만 인정받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고, 그 뒤로는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가르쳤던 곳이다.
나에게 고등학교는 친구들 제외하곤 존경했던 선생님은 단 한 분도 안 계신다.
오히려 담담하게 긴 수능일을 버티며 부단히 노력하는 친구들을 존경했다.
본인의 고됨도 감당하기 쉽지 않으면서 옆 친구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아이들말이다.
물론 한국에 존경스러운 선생님들이 많을테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에선 존경심이 드는 선생님은 없었다.
특히 몇몇 나이 많으신 선생님들은 (내 기억 상 문학, 사회 등 문과 쪽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셨다) 이런 말로 운을 띄우며 수업을 시작하곤 하셨다.
‘지방 대학 다니며 무시당할래? 아니면 주말에 ktx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서울 캠퍼스를 즐길래?’,
‘공부를 못하면 남들 밑에서 싫은 소리 들으며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공부 의욕을 북돋았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 말의 몇 부분은 사실이었다. 성적과 대학이 한 사람의 많은 기회와 성공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말의 80%는 틀렸다.
생각보다 학교만으로 좋은 인생을 살기엔 너무나 세상에 많은 걸림돌이 있고,
때로는 좋은 기회와 가능성이 게임 보상처럼 생기기도 했다.
학교를 잘 나오고 잘 지냈던 사람들이 인생의 급작스러운 일로 힘들어지기도 했고,
학교를 잘 나오지 않아도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기업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엔 AI 가 등장했고, 공부만 했던 사람들의 쓸모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크게 바뀌고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만’ 했다. 그래서 공부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다.
우리는 등신 같은 말을 들으며 공부만 했고, 공부만 했더니 등신이 되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뒤로 한 채 오로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돈을 잘 벌기 위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우리 진짜 내면은 고립시켰다.
사람들이 20~30대에게 이기적이라고 할 때마다 느낀다. 무지의 민낯, 공감 능력 결여, 의식의 협소이 모든 것이 한 문장에 담겨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세대에게 배려받고 이해받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자 모순이다. 윗 세대가 이미 남을 짓밟고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과 나약하다면 차별당해도 된다는 사악한 씨앗을 심었기에 독성 있는 약초를 심어놓고 수박을 바라선 안된다.
우리나라엔 직업의 귀천이 있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누군가가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떠든다면 그건 위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그런 귀천의 분간을 박살낼 일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__매너티연